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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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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로마카톨릭 vs. 프로테스탄트 #04: 프로테스탄트 관점에서 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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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04-02-24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프로테스탄트의 관점에서 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순서
  1. 개요 
  2. 반유대주의인가? 
  3. 복음서의 컨텍스트 
  4. 수난인가? 부활인가? 
  5. 멜 깁슨의 종교적 배경 
  6. 인물설정 
    1. 예수 
    2. 여인들 :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 
    3. 여인들 : 막달라 마리아 
    4. 여인들 : 베로니카 
    5. 여인들 : 클라우디아 
    6. 사탄 
    7. 사도들 
    8. 빌라도 
    9. 군중과 로마병사 
  7. 총평


The Passion of the Christ


§ 개요

2004 년 벽두부터 미국언론의 머리기사를 크게 장식해 온 두가지 주제가 있다면 하나는 동성결혼/Gay Marriage의 합법화를 둘러싼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멜 깁슨 감독의 새영화 {The Passion of Christ}다.

2월 25일 교회력으로 예수의 수난을 기념하는 사순절의 시작을 알리는 Ash Wednesday (재의 수요일)에 미국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개봉 이전부터 反유대주의 (Anti-Semitism)에 기름을 붓는 재앙이 될 것이라는 전세계 유대인의 격렬한 비난을 받아왔다. 유대인 단체들과 유대인 영화 평론가 대부분은 개봉 직전 2주 동안 비판의 강도를 높였고, 개봉 직후 대개의 메이저 신문사들은 두 진영으로 갈라진 관객들의 엇갈린 평가를 공정하게 소개하느라 한바닥 이상을 할애했다. 과연 이 영화는 유대인들, 혹은 유대인들의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정말로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고 있을까?

개봉 이틑날, 한 명의 프로테스탄트, 한 명의 로마 카톨릭, 한 명의 무슬림, 그리고 한 명의 무신론자와 함께 이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히브리어, 아람어/시리아어, 라틴어 세가지 언어를 사용한다. 이 영화를 함께 본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온 유학생이자 룸메이트 모함메드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미국에서 히브리어 언아학을 전공해 유창한 히브리어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아람어도 부분적으로 해독할 수 있다.




§ 반유대주의인가?

이 영화는 기독교도들의 신앙을 담은 영화이며,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수난의 종교적, 역사적, 문화적 문맥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어필하기 쉽지 않은 영화다. 성서의 맥락을 개념적으로만 알고 있는 비신자들에게 이 영화는 AD 33년 경 예수라는 한 유대인이 로마의 최고잔혹형인 십자가형을 받은 사건을 역사상 가장 잔혹하게 재현한 영화로만 이해될 뿐이다. 그것은 이 영화가 예수의 죽음 12시간 동안의 과정, 특히 죽어가는 과정에만 촛점을 맞춘 탓에, 예수의 죽어가는 과정은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는 반면 그가 죽어야 하는 신학적 이유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멜 깁슨의 이 영화는 관객들이 "예수의 수난"이라는 사건의 배경을 알고 있다는 가정을 깔고서 시작한다.

사실 유대인들이 이 영화에 불쾌해 할 이유는 충분하다. 분명 이 영화는 예수의 사형에 대한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돌리고 있다. 많은 유대인 비평가들이 (과장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예수의 죽음의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돌림으로써 대중들이 유대인들을 그리스도를 죽인 사람(Christ Killer)로 몰고갈 위험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유대인들은 이렇게 주장할 충분한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중세유럽에서 벌어진 간헐적 유대인 학살, 히틀러가 자행한 인종청소 같은 역사적 사실들만 보아도,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한 대중적 표어는 바로 "그리스도를 죽인 민족에 대한 응징"이었다. 또한 이슬람의 코란은 유대인들을 최대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그 근거 역시 "이사(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사악한 민족"이라는 꼬리를 달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중동사태를 둘러싸고 전 세계적으로 이스라엘을 성토하는 정치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이 영화에 그토록 민감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러나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많은 유대인 비평가들은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라는 문제가 이 영화를 둘러싼 논쟁의 촛점인 듯 말한다. 주장인 즉슨, 예수의 죽음의 책임은 원래 로마에 있었으나, 후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영내로 퍼져가는 과정에서 로마와의 불필요한 충돌을 막기 위해, 복음서의 저자들이 (혹은 필사자들이) 그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전가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복음서를 읽어 본다면 예수의 처형에 관련된 1차적 책임은 분명히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있다. 심지어 복음서에는 등장하지만 유대인들의 항의로 영화에서는 자막처리조차 되지 않은 대제사장 가야파의 선언 - "이 자의 피는 우리 민족에게 영원히 돌릴 것이다" - 는 이 책임의 소재가 유대인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래서?

유럽에서의 유대인 학살이 기독교도들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점은 아무리 비난받아도 모자람이 없다. 그리고 그 학살의 근거로 기독교도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았다는 점도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기소했고 로마군이 예수의 사형을 집행했다는 사실까지 바꾸어야 할 이유는 없어보인다. 역사적 정황을 십분 고려한다해도 이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이다.

사실 유대교 측 자료를 찾아본다면, 당대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굳이 로마군의 힘을 빌지 않았더라도 할 수만 있다면 예수를 죽이려고 했을 것이 분명해진다. 다만 이 유대교 측 자료의 문제는, 등장하는 '예수'란 이름이 드물지 않은 이름이었고, 추정인물들의 이름이 늘 제시되어 있지도 않고, 또 {탈무드}는 역사적인 연도나 자료제시에 거의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탈무드} 등의 문건에 묘사된 인물이 도대체 누군지 특정하기 아주 힘들다. 중세 유럽에 주로 동유럽에 거주한 유대인 집단인 아쉬케나지들이 {탈무드}의 그 인물들을 기독교의 예수로 해석하는 성향을 보였는데, 이 내용들이 거의 다 모욕적인 진술들이기 때문에 로마카톨릭교회가 나서서 깊이 조사한 적도 있다. 그 결과 중세기 유대인 탄압 시에 {탈무드}의 해당구절은 중요한 기폭제가 되기도 했고,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유대인들의 {탈무드}에서 마리아를 창녀라고 부른다며 격렬히 유대인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탈무드는 꽁트 모음집 처럼 재편집된 소프트한 문건이 아니라, 원전 탈무드를 말한다.

게다가 '예수의 생부'로 언급되는 인물의 호칭도 {탈무드}의 필사본들마다 조금씩 다 다르다. 가령, {탈무드}에서 예수로 추정되는 인물들은 주로 ~의 아들이란 뜻의 '벤" 뒤에 아버지의 이름이 붙는 식으로 언급되는데, '벤 판데라'나 '벤 스타다'가 그것이다. {예루살렘 탈무드}나 아람어 성문법 결집서인 {토셉타} 등에는 "예슈 벤 판데라"란 이름이 등장하지만, {바빌로니아 탈무드}에는 이름없이 그냥 '벤 판데라'라만 되어 있다. 이 '예수'로 추정되는 인물의 어머니로 직접 '마리아 / 미리암'이 연결되는 경우는 없지만, 대신 어떤 판본에 따르면 (스타다의 아내인) '미리암'과 그녀의 애인인 '판테라' 사이에서 문제의 인물이 태어난 것으로 암시되고 있기도 합니다. 미리암도 워낙 흔한 이름이라서 이렇게 간접적으로 연결한다고 한들, 이 인물의 정확한 정체를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예슈 벤 판데라 (Yeshu ben Pandera / Pantere)' 란 이름은 말은 "처녀"란 뜻의 그리스어 "파르테노스 parthenos"란 단어를 이용한 말장난 (pun)이라 대개 여겨지는데, 이 말은 '예수가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기독교의 교리를 조롱하기 위해 유대교 측에서 유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혹은 이 ''판데라'는 그리스 이름으로 인기있었던  '판테라 (표범)'를 뜻할 수도 있다. AD 19세기 중반에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압데스 판테라'란 (아마도 유대계) 로마 병사 (궁수)의 무덤 표지석이 발견된 적은 있다.  라틴어로 이렇게 적혀 있다.

Tib(erius) Iul(ius) Abdes Pantera /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압데스 판테라
Sidonia ann(orum) LXII / 시돈 출신, 62세
stipen(diorum) XXXX miles exs(ignifer?) / 40년 간 복무, 전직
coh(orte) I sagittariorum / 제 1 궁수대 로마군 기장 담당자
h(ic) s(itus) e(st) / 여기 잠들다.

이 '판테라'가 랍비들이 말한 그 '판데라' 일까? 문제는 이 판테라가 누군지 도무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판테라' 자체는 그리스어이고, '압데스'는 '신의 종'이란 셈계 단어로서 아마도 노예 출신으로 후에 로마 시민권을 얻게 된 셈계 인물이었을 것으로 여기진다. '판테라' 자체는 흔한 이름이다.

혹은 예슈 벤 스타다 (Yeshu ben Stada)라고도 불린다. 유대교 랍비들은 일반적으로 예수는 로마병사(Stada?)가 마리아와 간음하여 태어난 사생아이자 마법으로 기적을 일으킨 마술사로 가르쳤다. 이 이야기는 AD 2세기 말 반-기독교 측의 선봉장이던 그리스 철학자 켈수스가 유대인들에게 얻은 정보로 기록되어 있고, 기독교 교부인 오리게네스는 켈수스를 반박하는 저술 가운데 이 주장을 인용했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으로 로마인 만을 지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역사적 정답은 유대인이 "기소"해 로마군이 사형을 "집행"한 것이라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가령, AD 5세기에 바빌로니아에서 집결된 {바빌로니아 탈무드}에서는 예수를 죽어 마땅했던 자로 묘사하고 있다. 발췌해 보자.


Baraila - "On the eve of Passover they hanged Yeshu (of Nazareth) and the herald went before him for forty days saying (Yeshu of Nazareth) is going forth to be stoned in that he hath practiced sorcery and beguiled and led astray Israel. Let everyone knowing aught in his defence come and plead for him. But they found naught in his defence and hanged him on the eve of Passover"- Baraitha Bab. Sanhedrin 43a

Amoa "Ulla" - "And do you suppose that for (Yeshu of Nazareth) there was any right of appeal? He was a beguiler, and the Merciful One hath said: 'Thou shalt not spare neither shalt thou conceal him.' It is otherwise with Yeshu, for he was near to the civil authority."

로마에 대한 봉기는 젤롯을 주축으로 한 A.D.66년  1차 봉기와 AD 132년 시므온 바르 코크바가 랍비 아키바의 지지를 얻고 스스로를 메시아로 자칭하면서 일으킨 제 2차 봉기가 있었다. 기독교도들은 이 두 차례의 봉기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AD 66년의 제 1차 독립전쟁 실패 4년 후, 예루살렘이 함락된 다음 살아남은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바리사이파들을 이끌고 현재 텔-아비브 남동쪽 약 20㎞ 지점에 위치한 야브네 (그리스어로는 얌니아)로 가서 성전중심이 아닌 시나고그 중심의 유대교를 재정비했다. 이 야브네는 후일 히브리 성서의 정경목록의 최종확립이 이루어진 곳이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에 따르면 A.D. 85년경 야브네의 랍비 사무엘은 시나고그 예배 때 사용된  18조 기도문 (슈모네 에즈레/아미다) 가운데 이단자들을 저주하는 제12조 (비르카트 하 미님)에 '나자렛 사람'들을 추가했고 이후 기독교도들은 시나고그에서 영구추방 된다. 제 12조의 의역은 다음과 같다.

"For the apostates let there be no hope. And let the arrogant government be speedily uprooted in our days. Let the noẓerim and the minim be destroyed in a moment. And let them be blotted out of the Book of Life and not be inscribed together with the righteous. Blessed art thou, O Lord, who humblest the arrogant" (Schechter).

"...노쯔림과 미님 (나자렛파/기독교도와 이단자/이교도들)을 사라지게 하소서. 생명책에서 그들의 이름을 지워버려 그들의 이름이 의인들과 함께 씌어 있지 않게 하소서. 무엄한 자들을 굴복시키시는 하느님, 찬양받으소서."  / 번역: 최광민

그럼 이제 "사실"이 아닌 "해석"에 촛점을 맞추어 보자. 기독교도들이 유대인을 저주하는 것은 옳은가? 신약성서의 주제는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에 있지않고, "왜" 예수가 죽어야 했는가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신약성서는 "모든 인류"가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그 순간 모든 인류를 다만 "대표"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기독교도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들어 유대인을 비난한다면, 바로 그 순간 그는 그 자신을 살인자로 기소하는 것과 같다. 즉, 기독교도는 유대인을 비난할 자격이 없고, 유대인 또한 그들 선조가 한 일을 부인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그 자신을 수차례 죽이려고 했던 동포 유대인들에 대해, 바울은 로마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 자신의 구원을 잃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동포인 유대인들이 신의 자비를 받기를 바라는 자신의 심경을 아래와 같이 적었다. 유럽의 기독교도들은 유대인들을 "그리스도를 죽인 민족"이라는 죄목으로 죽이기 앞서, 바울의 편지를 조금 더 자세히 읽어볼 필요가 있었다.

..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이것을 증언하여 줍니다. 내게는 내 동족을 위한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 바울, {로마서} / 한국어 표준새번역

이 영화는 예수가 "어떻게" 죽어갔는가를 생생히 묘사하는데 집중하던 나머지, 예수가 "왜" 죽어야 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을 소홀히했고, 그 결과 예수의 수난이 상징하는 신과 인간 사이의 화해라는 메시지를 소모적인 논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 복음서의 컨텍스트

그러나 이 영화가 핵심 메시지를 놓친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영화의 오프닝 자막에 짧지만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이 자막에 인용된 글은 전통적으로 BC 7세기 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는 구약성서 {이사야} 제 52장에서 53장으로 넘어가는 내용의 일부이다.

{이사야}는 구약성서의 어떤 책보다도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가르침을 많이 담고 있는 예언서이며, 또한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예수 당시로부터 몇 세기 후까지도 유대인들은 이 예언의 주인공을 '메시아'로 해석했다. 그러나 이런 "기독교적"인 주장을 피하기 위해 현대 유대인들은 가급적 이를 "이스라엘 민족"이란 집단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나 현대에도 정통파 유대교 분파들의 일부는 이를 여전히 '메시아'에 대한 해석으로 풀이한다.

읽어보자.

이제 나의 종은 할 일을 다 하였으니, 높이 솟아 오르리라.
무리는 그를 보고 기가 막혀 했었지.
그의 몰골은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고
인간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제 만방은 그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제왕들조차 그 앞에서 입을 가리우리라.
이런 일은 일찌기 눈으로 본 사람도 없고 귀로 들어 본 사람도 없다.
그러니 우리에게 들려 주신 이 소식을 누가 곧이들으랴?
야훼께서 팔을 휘둘러 이루신 일을 누가 깨달으랴?

그는 야훼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그는 멸시를 당하고 퇴박 맞은 사람.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피해 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그러나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 멋대로들 달아났지만,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기를,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할때 그 신세를 걱정해 주는 자가 어디 있었느냐?
그는 인간사회에서 끊기었다. 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
폭행을 저지른 일도, 입에 거짓을 담은 적도 없었지만
그는 죄인들과 함께 처형당하고, 불의한 자들과 함께 묻혔다.
야훼께서 그를 때리고 찌르신 것은 뜻이 있어 하신 일이었다.
그 뜻을 따라 그는 자기의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았다.
그리하여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오래 살리라.
그의 손에서 야훼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 이사야 52-53장 (공동번역/표준새번역)

AD 6년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던 헤롯 아켈라오스 왕을 폐위하고 그 지역 총독으로 임명한 코포니우스 총독이 관할지역의 12(또는 14)~65세의 주민에게 1데나리온씩 의 인두세를 강압한 것에 반발해, 갈릴리 가말라 출신 유다가 주민세 거부운동을 벌이고 동지들을 모아 열심당(젤롯당)을 조직한다. 그 이래로 AD 70년 로마군단 총사령관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대부분 예수가 성장한 유대아/사마리아 북방 갈릴리 지역에 기반을 두었던 젤롯(Zealot) 혹 열심당원이라 불리던 유대인 그룹은 지속적으로 로마의 지배에 저항해 무장봉기를 일으켰고, 때로는 수 백명씩 어김없이 잔혹한 십자가형을 받았다는 기록이 AD 1세기에 로마로 귀화한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에 남아있다. 만약 이 영화 속의 예수를 이사야서의 컨텍스트로 읽지 않는다면, 예수가 받았던 십자가형의 잔혹함은 이들 젤롯들이 받았던 십자가형의 그것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십자가형은 물론 로마 최고의 끔찍한 형벌이지만, 끔찍한 것으로만 본다면 십자가형보다 더 잔혹한 처형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와 젤롯들의 십자가를 구별하는 것은 그 처형방식의 잔혹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위에 인용된 {이사야}가 제공하는 일련의 문맥이다. 예수가 정말로 이 {이사야}가 예언한 그 메시아인지에 대한 논의는 잠시 곁에 놓아두자. 하지만 젤롯들과 달리 예수와 그의 사도들이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이 일련의 "고난받는 종"을 예수에게 적용시켰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이사야}의 컨텍스트 상에서 읽힐 때에만 의미를 가질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예수에 대한 이 관점 이외의 다른 측면을 조금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음과 맞바꾸는 신의 아들의 낮아짐이라는 관점으로 영화를 읽지 못한다면, 이 영화는 다른 젤롯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죽어간 한 명의 유대인 사내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럴 경우, 이 영화는 잔인하지만 매우 지루한 영화가 되어버리게 된다.

히틀러의 나찌정권에 저항하다 사형당한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는 예수의 수난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 Of the humiliated one we say, 'This is God'. He makes none of the divine properties evidnet in his death. On the contrary, we see a man doubting God as he dies. But of this man we say, 'This is God'. He who cannot do that does not know what it means for God to become man. In the incarnation God reveals himself without conncealment... 

이 모욕당하는 사람 (예수 - 필자 주)을 우리는 '신'이라고 말한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가운데 그 어떤 신적인 속성들도 보여 주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신을 의심하고 죽어가는 한 사람을 본다. 그러나 바로 그가 신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신이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성육신 안에서 신은 숨김없이 자신을 계시한다..." --- {Witness to Jesus Christ} / 번역: 최광민

그리고 또 다른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은 {The Crucified God}이란 저작 속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보여준 (자발적인) 절대적 "무능"이 사실은 그의 "전능"이었다고 선언할 것이다.

....Humiliation to the point of death on the cross corresponds to God's nature in the contradiction of abandonment. When the cruficied Jesus is called the 'image of the invisible God,' the meaning is that 'this is God, and God is like this'. god is not greater than he is in this humiliation. God is not more golorious than he is in this self-surrender. God is not more powerful than he is in this helplessness. God is not more divine than he is in this humanity."...

[전략]...십자가에서 처형되기에 이르는 그(=예수)의 모욕과 낮아짐은 버려짐이란 모순 속에 있는 신의 본성에 상응하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보이지 않는 신의 형상’이라고 불릴 때, 그것은 "이 사람은 신이며, 신은 이와 같다"라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은 이 모욕 가운데서보다 더 위대하시지 않다. 신은 이 자발적 희생 가운에서보다 더 영광스럽지 않다. 신은 이 무능 가운데서보다 더 능력있지 않다. 신은 이 인간성 가운데서보다 더 신적이지 않다... 십자가 위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사건은 신의 사건이다... 여기서 신은 의 접촉할 수 없는 영광과 영원으로부터 단지 바깥을 향해 행동하신 것이 아니다. 여기서 그는 자기 자신에게 행동하였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으로 인해 고난을 당한다. 그래서 신은 그의 존재와 더불어 사랑이다..." --- 번역: 최광민

물론 위에 언급된 본회퍼와 몰트만은 소위 '자유주의 신학'에 가까운 신학자들로, '성육신'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인식과 (용어는 유사하나) 조금 (혹은 꽤)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영화를 같이 본 무슬림 룸메이트인 모함메드와 내가 관람 후 나눈 대화는, '메시아의 모욕/죽음'에 관한 기독교의 관점이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얼마나 크게 엇갈리게 하는지는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함메드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Do you Christians call it LOVE that such a righteous man, Isa(Jesus), was killed like that?

이사/예수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저렇게 죽는걸 두고, 너희 기독교도들은 그걸 "사랑"이라고 부른단 말이야?"

{코란}에서는 예수(이사)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알라가 (알라의 예언자) 예수를 (그 방법이 정확히 기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구해내어 하늘로 들어올렸고, 그 대신 죽은 것은 가룟 유다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유대인들과 기독교도들은 예수가 정말로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답했다.

"Why not?"




§ 수난인가? 부활인가?

이 영화에 대해서는 유대인과 기독교도 사이의 논쟁 뿐 아니라, 기독교도들 간에도 논쟁이 있었다. 수난의 의미에 대한 교단 간의 해석차이 때문이다. 로마 카톨릭과 동방정교회의 십자가에는 예수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못박혀 있는 반면 프로테스탄트의 십자가는 비어있는데, 이것은 예수의 수난을 바라보는 교단 간의 조금 상이한 해석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묘사한 예수고상의 사용에 특별히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으니, 마르틴 루터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했던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교수로서 초창기에 루터의 종교개혁에 합류했다가 1525년 경부터 그와 대립각을 세웠던 안드레아 칼슈타트는, 스위스의 율리히 쯔빙글리처럼 예수고상 및 마리아상을 우상숭배로 간주하고 제거할 것을 주장했다. (칼슈타트는 이후 스위스 취리히와 바젤로 옮겨갔다.) 제네바/쥬네브의 장 칼뱅은 예수고상 뿐 아니라 십자가 자체도 우상숭배로 나아갈 위험이 있음을 지적하고 둘의 사용 모두에 대해 격렬히 반대했다.

로마 탄압 하의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십자가는 아직 기독교의 공식적 상징이 아니었다. 십자가형이란 로마의 중죄인에게 적용되는 로마의 최고잔혹형이었기 때문에, 당시 로마정부로부터 탄압당하고 있던 기독교도들은 공공연히 이 상징을 내세울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카타콤의 묘지에 십자표지가 등장하고는 있지만, 당시 기독교도들은 훨씬 다양한 상징들로 자신들의 종교를 표시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그리스어 "Iesos, Christos, Theou, Uios, Soter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의 머릿글자로 만든 이크튜스(물고기) 상징, 그리고 크리스토스의 첫 두 그리스 알파벳인 카이(X)와 로(P)를 중첩시킨 카이-로 상징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AD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 이때부터 십자가는 "형틀"이라기 보다는 "영광의 트로피"로 더욱 표상되었다. 즉, 십자가에서의 예수의 고난 그 자체보다는 그 고난을 이기고 부활한 예수가 더욱 강조된 것이었다. 여기서 "트로피"란 (그리스어 τρόπαιον, 라틴어 tropaeum),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투에서 전투가 승리로 끝난 후, 십자모양의 틀에 적의 갑옷과 무기를 널어놓고 승리를 기념하던 기념물을 말한다.


로마의 tropaeum, - the cast of Trajan's column located in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출처:Wikimedia Commons)

십자가를 승리의 프로피로 보는 이런 관점은 콘스탄티누스의 시대보다 200여년 전인 2세기 초반에 이미 수립되어 있었다. 가령, AD 165년 순교한 사마리아 출생의 기독교 변증가 유스티노스(Justin the Martyr)는 기독교의 박해자 안토니우스 황제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인 첫번째 {변증/Apology}의 제 65장에 이렇게 적었다.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text/justinmartyr-firstapology.html

CHAPTER LV -- SYMBOLS OF THE CROSS.

But in no instance, not even in any of those called sons of Jupiter, did they imitate the being crucified; for it was not understood by them, all the things said of it having been put symbolically. And this, as the prophet foretold, is the greatest symbol of His power and role; as is also proved by the things which fall under our observation. For consider all the things in the world, whether without this form they could be administered or have any community. For the sea is not traversed except that trophy which is called a sail abide safe in the ship; and the earth is not ploughed without it: diggers and mechanics do not their work, except with tools which have this shape. And the human form differs from that of the irrational animals in nothing else than in its being erect and having the hands extended, and having on the face extending from the forehead what is called the nose, through which there is respiration for the living creature; and this shows no other form than that of the cross. And so it was said by the prophet, "The breath before our face is the Lord Christ." And the power of this form is shown by your own symbols on what are called "vexilla" [banners] and trophies, with which all your state possessions are made, using these as the insignia of your power and government, even though you do so unwittingly. And with this form you consecrate the images of your emperors when they die, and you name them gods by inscriptions. Since, therefore, we have urged you both by reason and by an evident form, and to the utmost of our ability, we know that now we are blameless even though you disbelieve; for our part is done and finished.

그러나, 소위 제우스의 아들들이라 불리는 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십자가에 달리는 것 까지는 모방할 수 없었다. 십자가에 대한 모든 언급들이 상징으로 처리되어 있었기에 그들은 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언자가 예언한 이것은 신의 능력과 역할에 관한 위대한 상징 (=십자가)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우리들의 관찰을 통해 그러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세상 만물 가운데, 이 표지 없이 통치하거나 공동생활을 누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십자형의) 트로피 형상의 돛대없이는 안전하게 바다를 누빌 수 없다. (십자형의) 쟁기없이 땅을 갈 수 없다. 광부나 기술자는 이 형상의 도구없이 작업을 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은 직립하여 두 팔을 (십자형으로) 활짝 펼 수 있다는 점과, 또 그 얼굴의 이마에서 숨 쉬는 코로 내려오는 선이 십자를 이룬다는 점에서 이성없는 하등동물과 구별된다.....[후략]  / 유스티노스, {첫번째 변증} 제 65장 / 번역: 최광민    

유스티노스와 동시대에 지중해를 누비던 로마의 전형적인 배에 달린 돛대의 구조를 살펴보면 유스티노스가 왜 이 돛대의 구조를 앞서 언급한 트로피움에 빗대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AD 1-2세기 로마 갤리선, 튀니지 Bardo 박물관 소장 모자이크

로마제국 영내에서 기독교가 공인된 AD 313년 이후 지중해 미술에서,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것으로 표상되기 보다는 십자가에서 내려와 십자가를 들고 있거나 십자형 후광을 두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 동안의 박해에 대한 보상적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십자가는, 원래 사형수의 죽음을 천천히 지연시키면서 그가 겪는 죽음의 고통과 굴욕을 최대화하는 동시에, 이 장면을 몇 시간 동안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혐오와 공포를 최대로 불러일으키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다.  이 형벌은  BC 1세기를 전후하여 트라키아에서 로마로 도입되는데, 그 무렵에 노예반란을 일으킨 (역시 트라키아 출신) 스파르타쿠스와 그를 따르던 6천 여명이 십자가형으로 공개처형 되었다.  형틀의 모형이 정확히 십자일 필요는 없다.

키케로는 십자가형을 “crudelissimum taeterrimumque supplicium /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런 처형법” (Verrem 2:5.165)으로 평가했으며, 따라서 로마시민은 이 형벌에서 열외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대신 이 형벌을 노예에게 적용할 수 있는 최고의 형벌, 즉 “Extremum summumque suplicium / 노예에 대한 극단적이고 최고의 형벌” (Verrem 2:5.168) 로 보았으며, 로마인들은 '십자가'란 단어를 입에 올리거나 생각하는 것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고 보았다. {신약성서}에는 '우리 (기독교도)는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표현의 뉘앙스는 십자가형에 대한 당대 로마인들과 지중해인들에 대한 생각을 이해해야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고대 세계의 십자가는 모욕과 공포의 상징이었다.

BC 1세기에 활동한 로마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키케로의 진술을 읽어보자.

[169] Sed quid ego plura de Gavio? quasi tu Gavio tum fueris infestus ac non nomini generi iuri civium hostis. Non illi, inquam, homini sed causae communi libertatis inimicus fuisti. Quid enim attinuit, cum Mamertini more atque instituto suo crucem fixissent post urbem in via Pompeia, te iubere in ea parte figere quae ad fretum spectaret, et hoc addere,—quod negare nullo modo potes, quod omnibus audientibus dixisti palam,—te idcirco illum locum deligere, ut ille, quoniam se civem Romanum esse diceret, ex cruce Italiam cernere ac domum suam prospicere posset? Itaque illa crux sola, iudices, post conditam Messanam illo in loco fixa est. Italiae conspectus ad eam rem ab isto delectus est, ut ille in dolore cruciatuque moriens perangusto fretu divisa servitutis ac libertatis iura cognosceret, Italia autem alumnum suum servitutis extremo summoque supplicio adfixum videret.

But why need I say more about Gavius? as if you were hostile to Gavius, and not rather an enemy to the name and class of citizens, and to all their rights. You were not, I say, an enemy to the individual, but to the common cause of liberty. For what was your object in ordering the Mamertines, when, according to their regular custom and usage, they had erected the cross behind the city in the Pompeian road, to place it where it looked towards the strait; and in adding, what you can by no means deny, what you said openly in the hearing of every one, that you chose that place in order that the man who said that he was a Roman citizen, might be able from his cross to behold Italy and to look towards his own home? And accordingly, O judges, that cross,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foundation of Messana, was erected in that place. A spot commanding a view of Italy was picked out by that man, for the express purpose that the wretched man who was dying in agony and torture might see that the rights of liberty and of slavery were only separated by a very narrow strait, and that Italy might behold her son murdered by the most miserable and most painful punishment appropriate to slaves alone.  ---  Cicero,  {In Verrem} 2.5.169

[165] Cum haec omnia quae polliceor cumulate tuis proximis plana fecero, tum istuc ipsum tenebo quod abs te mihi datur; eo contentum esse me dicam. Quid enim nuper tu ipse, cum populi Romani clamore atque impetu perturbatus exsiluisti, quid, inquam, elocutus es? Illum, quod moram supplicio quaereret, ideo clamitasse se esse civem Romanum, sed speculatorem fuisse. Iam mei testes veri sunt. Quid enim dicit aliud C. Numitorius, quid M. et P. Cottii, nobilissimi homines ex agro Tauromenitano, quid Q. Lucceius, qui argentariam Regi maximam fecit, quid ceteri? Adhuc enim testes ex eo genere a me sunt dati, non qui novisse Gavium, sed se vidisse dicerent, cum is, qui se civem Romanum esse clamaret, in crucem ageretur. Hoc tu, Verres, idem dicis, hoc tu confiteris, illum clamitasse se civem esse Romanum; apud te nomen civitatis ne tantum quidem valuisse ut dubitationem aliquam [crucis], ut crudelissimi taeterrimique supplici aliquam parvam moram saltem posset adferre.

When I have made all these points, which I undertake to prove, abundantly plain to your most intimate friends, then I will also turn my attention to that which is granted me by you. I will say that I am content with that. For what—what, I say—did you yourself lately say, when in an agitated state you escaped from the outcry and violence of the Roman people? Why, that he had only cried out that he was a Roman citizen because he was seeking some respite, but that he was a spy. My witnesses are unimpeachable. For what else does Caius Numitorius say? what else do Marcus and Publius Cottius say, most noble men of the district of Tauromenium? what else does Marcus Lucceius say, who had a great business as a money-changer at Rhegium? what else do all the others ray? For as yet witnesses have only been produced by me of this class, not men who say that they were acquainted with Gavius, but men who say that they saw him at the time that he was being dragged to the cross, while crying out that he was a Roman citizen. And you, O Verres, say the same thing. You confess that he did cry out that he was a Roman citizen; but that the name of citizenship did not avail with you even as much as to cause the least hesitation in your mind, or even any brief respite from a most cruel and ignominious punishment.  ---  Cicero,  {In Verrem} 2.5.165

다음으론 키케로의 {PRO C. RABIRIO PERDVELLIONIS REO AD QVIRITES ORATIO}에 등장하는 진술이다.  여기서 그는 십자가형의 끔찍함을 언급하면서 로마인들은 이 단어를 입에 담거나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진술한다.

16 misera multatio bonorum, miserum exsilium; sed tamen in omni calamitate retinetur aliquod vestigium libertatis. mors denique si proponitur, in libertate moriamur, carnifex vero et obductio capitis et nomen ipsum crucis absit non modo a corpore civium Romanorum sed etiam a cogitatione, oculis, auribus. harum enim omnium rerum non solum eventus atque perpessio sed etiam condicio, exspectatio, mentio ipsa denique indigna cive Romano atque homine libero est. an vero servos nostros horum suppliciorum omnium metu dominorum benignitas vindicta una liberat; nos a verberibus, ab unco, a crucis denique terrore neque res gestae neque acta aetas neque vestri honores vindicabunt?

16Wretched is the loss of one's good name in the public courts, wretched, too, a monetary fine exacted from one's property, and wretched is exile, but, still, in each calamity there is retained some trace of liberty. Even if death is set before us, we may die in freedom. But the executioner, the veiling of heads, and the very word “cross,” let them all be far removed from not only the bodies of Roman citizens but even from their thoughts, their eyes, and their ears. The results and suffering from these doings as well as the situation, even anticipation, of their enablement, and, in the end, the mere mention of them are unworthy of a Roman citizen and a free man. Or is that, while the kindness of their masters frees our slaves from the fear of all these punishments with one stroke of the staff of manumission, neither our exploits nor the lives we have lived nor honors you have bestowed will liberate us from scourging, from the hook, and, finally, from the terror of the cross?  ----  Cicero, { PRO C. RABIRIO PERDVELLIONIS REO AD QVIRITES ORATIO} 16

...[전략] 비록 우리가 죽더라도, 우리는 자유인으로서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사형집행인, (사형수가 쓰는) 두건, 그리고 무엇보다 저 "십자가"란 같은 단어들은 로마인이라면 몸과 생각과 눈과 귀에서 멀리해야 할 것이다....[후략] / 번역: 최광민 

AD 691-692년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노스 2세가 소집한 개최한 콘스탄티노플 공회의 (Council in Trullo)에서 예수의 수난이 가지는 역사적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전통적인 어린 양의 이미지가 아닌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묘사함으로써 예수의 "모욕"과 "고난"을 강조할 것을 결의하게 되었다. 이로써 교회는 그리스어 약자 I.N.B.I. (Ἰησοῦς ὁ Ναζωραῖος ὁ βασιλεὺς τῶν Ἰουδαίων) 혹은 라틴어 약자 I.N.R.I.(Iesus Nazarenus Rex Iudaeorum)라는 명패 아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이미지를 교회의 표준상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Canon #82

In some pictures of the venerable icons, a lamb is painted to which the Precursor points his finger, which is received as a type of grace, indicating beforehand through the Law, our true Lamb, Christ our God. Embracing therefore the ancient types and shadows as symbols of the truth, and patterns given to the Church, we prefer grace and truth, receiving it as the fulfillment of the Law. In order therefore that that which is perfect may be delineated to the eyes of all, at least in coloured expression, we decree that the figure in human form of the Lamb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Christ our God, be henceforth exhibited in images, instead of the ancient lamb, so that all may understand by means of it the depths of the humiliation of the Word of God, and that we may recall to our memory his conversation in the flesh, his passion and salutary death, and his redemption which was wrought for the whole world.

이는 또한 특별히 로마카톨릭에서 미사가 가지는 제례적 의미와 직결되는 연결고리가 있었다. 감사제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정교회와 프로테스탄트의 성찬식과 달리, 로마 카톨릭의 미사 (및 그에 수반된 영성체/유카리스트)는 예수의 희생을 재현한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수난과 그 예수고상 아래서 사제에 의해 집전되는 미사 (특별히 성만찬)은 오버랩되게 된다. 따라서 중세 내내, 특히 중세 말로 가면서 예수의 수난 그 자체에 대한 애상적 이미지는 폭발적으로 강화되어 나가게 된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에 있어 예수의 수난은 예수의 부활과 나란히 독자적 의미를 가진다. 또한 수난과정에 있어서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역할이 강조되게 된다.

이에 반해 로마카톨릭과는 성만찬에 대해 다른 견해를 취한 초기 프로테스탄트들은, 예수의 희생을 "재현"하는 미사의 관점이 이미 "부활"한 예수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미사" 그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예수에 대한 부활에 촛점을 맞추고자 십자가에서 예수를 떼어내게 된다. 이로써 프로테스탄트의 십자가는 비어있게 된 것이다. 프로테스탄트들은 단계적으로 예수의 수난과정에 대한 중세기의 애상적 이미지들을 상당히 약화시키는 대신 승리의 트로피로서의 십자가를 강조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프로테스탄트에게 있어 예수의 수난은 그 자체로서도 의미심장한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부활을 향한 도상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다.

멜 깁슨의 영화는 후자의 관점에 대한 전자의 대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의 관점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없이는 부활도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후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미국으로 유학 온 룸메이트 모하메드는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서 그런지 미국엔 십자가가 행길 어디에나 보인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아니 서울의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라면 몰라도 미국에 길 가에서 십자가는 교회 말곤 거의 본적이 없는데?

뭘 말하는 건지 물어보니 모하메드가 말한 것은 이것이었다. 아....모하메드 ...


전봇대

사우디 아라비아에는 저런 전봇대가 없는 걸까? 아니면 동일한 형상을 새 문맥에서 재해석 한 것일까? 하긴 모하메드 말을 듣고 다시 보니 억지로 보면 예수의 "INRI" 명패가 박힌 십자가 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Wikimedia Commons

사람은 보고 싶은 걸 보는 법이다.


§ 멜 깁슨의 종교적 배경

멜 깁슨 본인의 종교적 배경을 알아두는 것은 영화의 성서해석과 영화에 설정된 성서 외적요소를 이해하는데 훌륭한 참고가 된다. 멜 깁슨은 1960년대 이후의 로마 카톨릭의 변화를 거부하는 이른바 전통주의 카톨릭(Catholic Traditionalist)의 신자로서, 이 그룹은 1960년 이후의 교황청으로부터 이탈한 그룹이다. 그의 종교적 배경은 그의 영화가 (1960년대 이전의) 로마 카톨릭 전통을 강하게 반영할 것이란 점을 충분히 암시하고 있다. 이들은 제2차 바티칸 공회의의 결과 발생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 비판적인 {성 비오10세회/ Society of St.Pius X}와 인식을 같이 한다.

http://www.latinmass-ctm.org

한국어로 "전통주의 가톨릭"이라고 번역된 이 그룹은, 흔히 말하는대로 교황제를 거부하는 것을 신조로 삼는 분파들이 아니라 1964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시행되던 라틴어 미사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는 그룹이다. 이들은 각 나라 말로 미사를 진행할 것을 결의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에 조직되어 지금까지 존속하면서 1964년 이전으로의 회귀를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의 핵심은 "교황제 불복" 혹은 "교황제 폐지"가 아니라 전통적 라틴미사로의 회복이다. 그들이 현재 교황에 불복한다면, 그것은 현재 교황 역시 라틴미사의 전통을 바꿔놓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연속선 상에 있기 때문일 뿐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15세기 초반의 교황 요한 23세의 교서와 16세기의 피우스 5세의 교서로서, 라틴어가 아닌 속어(각 나라의 말)로 진행되는 미사는 아나테마 즉, 파문될 것임을 공표한 로마 카톨릭 측 트렌토 공의회의 결의사항을 따른다. (3명의 교황이 동시에 난립하던 시절의 교황 요한 23세는 공식적인 로마 카톨릭 역사에서는 교황을 참칭한 자로 간주되는데, 이것은 좀 야릇하다.)

아래는 파우스 5세의 교서와 트렌토 공의회의 결의내용이다.


"By this our decree, to be valid IN PERPETUITY, we determine and order that NEVER shall anything be added to, omitted from, or changed in this Missal... At no time in the future can a priest, whether secular or order priest, ever be forced to use any other way of saying Mass. And so as to preclude once and for all any scruples of conscience and fear of ecclesiastical penalties and censures, we herewith declare that it is in virtue of our Apostolic Authority that we decree and determine that this our present order and decree is to last in PERPETUITY and can never be legally revoked or amended at a future date...And if anyone would nevertheless ever dare to attempt any action contrary to this order of ours, given for all times, let him know that he has incurred the wrath of Almighty God and of the Blessed Apostles Peter and Paul."

"If anyone says that the Mass ought to be celebrated in the VERNACULAR only, ... let him be anathema…”

멜 깁슨은 이 영화의 대본을 구성함에 있어, 로마 카톨릭 전승에 따라 신약성서 속 4개의 복음서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과 내용을 추가시켰다. 특히 복음서에 등장하지 않는 모티브를 묘사할때는, 18세기의 독일의 로마 카톨릭 수녀이자 신비주의자였던 Anne Catherine Emmerich의 환상을 기록한 {Passion of our Lord Jesus Christ}를 상당부분 참고했다. 그러므로 영화 장면 가운데서 복음서에 등장하지 않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에머리히 수녀의 이 문서에 등장한다고 보면 된다.

http://archive.org/details/thedolorouspassi10866gut

내가 판단하기로는 약 80%의 복음서 내용에 20% 정도 로마카톨릭 전승을 보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말은 물론 복음서 밖의 전승이 꼭 잘못되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복음서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비신자들이 강렬한 인상을 받은 대부분의 장면들이 복음서 외부에서 차용된 것이라는 점은 지적해야 할 부분이다. 가령, 가룟 유다의 자살과정, 채찍맞은 예수가 흘린 피를 닦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예수가 골고타로 끌려가는 와중에 그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는 무명의 여인(로마 카톨릭의 성녀 베로니카), 그리고 베로니카의 수건에 핏자국으로 새겨진 예수의 얼굴, 강도의 눈을 쪼는 까마귀 같은 모티브들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내용이 아니라 대부분 에머리히 수녀의 환상집에 등장하는 장면들이다. 함께 영화를 본 무슬림 룸메이트가 이런 장면들에 대해 물어올 때마다, 이 장면들이 복음서가 아닌 전승이라는 점을 따로 설명해야 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수난과정의 묘사에 관한 한, 로마카톨릭 (그리고 멜 깁슨이 속한 Catholic Traditionalist)과 동방정교회 신자들에게 최적화된 해석을 제공한다. 프로테스탄트들은 약간의 의아스런 시선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이 복음서 밖의 교회전승 혹 전설이라해서, 이 이야기들이 반드시 거짓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염두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들은 이 전승들이 본질적 신앙에 "불필요"하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 인물설정

§§ 예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예수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다.

이탈리아의 좌파 감독 Pier Paolo Pasolini의 영화 {마태(오)의 복음}에 등장했던 예수는 선동적 마르크스주의자에 가깝다. 그 영화 속의 예수는 분노에 가득차 세상에 독설을 퍼붓는다. 비신자인 그가 종교영화를 만든 이유를 스스로 이렇게 설명했다: "나를 무신론자로 알고있는 당신은 아마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나 봅니다.. 그러나 난 신앙에 대한 향수를 가진 비-신자랍니다. / If you know that I am an unbeliever, then you know me better than I do myself. I may be an unbeliever, but I am an unbeliever who has a nostalgia for a belief."

그리스의 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과 같은 소설에 바탕한 Martin Scorsese의 영화에 등장하는 예수는 자기의 사명이 무언지 확신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의지박약한 존재이다.

그런가 하면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Jesus Christ Superstar}에 나오는 예수는 인간적이다 못해 너무 안쓰러울 정도도 유약하다. 이 다소 "불경스런" 뮤지컬이 한국교회에서 "성스러운 작품" 정도로 여겨지는 것은 코미디라고나 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의 프랑코 제피렐리가 감독한 1977년도 작 {나사렛 예수}가 해석한 예수를 좋아한다. 그 영화 속의 예수는 인간적이면서도 성스러운 두가지를 잘 그려냈다. 이 영화는 복음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몇가지 탁월한 해석을 보여주는데, 그 한 예는 로마총독 빌라도에 대한 해석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 자세히 쓰겠다.

프랑코 제피렐리의 영화는 몇가지 고고학적 고증을 반영하고 있다. 그 한가지가 예수가 형장까지 짊어지고 가는 십자가다. AD 1세기의 세네카(De Vita Beata 19:3, Epistola 101:12;)와 타키투스(Tacitus, Historiae, IV, 3)는 AD 1세기의 로마 십자가형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세네카는 아주 다양한 형틀이 존재했다는 것을 전한다. 이 형틀에는 직립기둥도 포함되고, 우리가 흔히 아는 +자형 형틀, 그리고 T자 모습을 가진 Tau십자가, 안드레의 십자가로 알려진 X자 형의 십자가도 포함된다. 세네카는 로마군들이 죄수의 팔을 벌리(+기둥)거나 거꾸로 못박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세네카의 기록이다.

"I see crosses there, not just of one kind but made in many different ways: some have their victims with head down to the ground; some impale their private parts; others stretch out their arms on the gibbet--- Seneca, {Dialogue} 6:20.3.

나는 거기서 십자가들을 보았는데, 형틀은 한 종류가 아니라 여러가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경우엔 사형수가 거꾸로 달려있었고, 또 다른 경우엔 사형수의 은밀한 부분들이 관통되어 있기도 했다. 또 어떤 경우엔 사형수의 두 팔이 펼쳐진 상태로 형틀에 고정되어 있기도 했다 ---- 세네카, {대화편} 6.20.3 / 번역: 최광민

거꾸로 달려 처형되는 방식은 전설에서 베드로가 바티칸 언덕에서 사형당했다고 알려진 형식이다. 또한 로마로 귀화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AD 70년 티투스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 당시 로마군들이 성벽에 유대인들을 기괴한 모습들로 못박고 조롱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전통적으로 예수는 형장인 골고타까지 완성된 형태의 십자형틀을 지고가는 것으로 묘사되어 왔는데, 제피렐리는 고증에 따라 형장까지 예수가 가로대만 짊어지고 가는 것으로 묘사했다. 예수는 이 가로대에 못질된 후, 이 상태로 형장에 이미 수직으로 박혀있던 기둥에 끌어올려져 최종적으로 십자형틀에 고정된다. 이 고증은 최근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십자형틀의 가로대를 patibulum이라 불렸는데, 예수와 거의 동시대인이었던 세네카, 타키투스, 플리니우스는 노예와 죄수들은 형장까지는 이 가로대를 짊어지고 갔다고 적고 있다. 수직기둥은 arbor infelix, infelix lignem (저주받은 나무)라고 부르거나 그 끝이 뾰족하다하여 acuta crux 혹은 crux simplex라고도 불렀다. 일반적으로 로마 작가들은 이 crux와 가로대인 patibulum을 거의 동의어로 사용했다. 이것은 일종의 제유법이다.

멜 깁슨은 이 영화에서 십자가의 형태에 있어 전통과 고증 사이에서 절충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 영화에서의 예수는 전통적인 관점에 따라 온전한 형태의 +형 형틀을 골고타까지 끌고간다. 하지만 예수와 함께 못박힌 두 강도의 경우에는 보다 현대적 해석에 따라 가로대인 patibulum만 지고간 후, 골고타에 이미 서있던 수직기둥에 끌어올려진다. 그리고 형틀의 최종형태 또한 절충적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전형적인 라틴 십자가인 반면, 나머지 두 강도의 십자가는 다소간 T자형 타우 십자가이다. 아마도 전통과 고증을 조화시키려는 멜 깁슨 나름의 고심의 흔적이라고 보인다. +형을 가진 형틀은 라틴어로 crux immissa라 불리웠고, T자형 형틀은 crux commissa라 불린다.

수난의 길에 예수의 형틀을 함께 지게되는 키레네 사람 시몬에 대해서는 복음서 상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아마도) 이 사람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이름을 들어 적고 있다는 점에서 볼때, 이 시몬의 두 아들은 나중에 예루살렘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였거나 전 혹은 시몬 자신이 기독교도로 개종했을 가능성이 높다. 전승에 따르면 알렉산더는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한편 예수의 육체적 수난과 부활을 거부한 2세기 로마의 영지주의자 바실리데스는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예수가 아니라 바로 이 키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 시몬은 영지주의의 역사에서 반복해서 등장하게 될 것이다.




§§ 여인들 :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멜 깁슨의 종교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아마도 이 영화에서 예수를 제외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것이다. 복음서의 텍스트를 문자대로 해석하고자 하는 다소 프로테스탄트적 영화에서는 예수의 수난과정 중 마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않다. 일반적으로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전형적인 어머니로 묘사된다.

예수의 사역과정 3년 동안 예수의 사명을 마리아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프로테스탄트의 관점과는 달리, 이 영화는 예수의 구원에 있어서의 마리아의 능동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로마 카톨릭적 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멜 깁슨의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마리아는 매우 강하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13세기 이래 수난절 무렵에 노래되어져 왔던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에 묘사되던 그 마리아와 비교해 보더라도, 멜 깁슨이 마리아를 얼마나 강한 여인으로 그렸는지는 분명해진다. 마리아의 눈은 충혈되어 있고 눈물이 가득하지만, 뺨에 눈물을 흘리는 일이 거의 없다. 오열하거나 기절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기 눈 앞에 보이고 있는 수난의 신학적 의미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법정에 선 예수를 바라보고, 채찍질 당한 곳에서 아들이 흘린 피를 닦아내고, 골고타로 끌려가는 예수의 뒤를 막달라 마리아와 요한과 함께 따라간다.

이 영화에 묘사된 마리아는 지금까지 묘사된 어떤 마리아보다도 강한 여인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이 마리아는 중세를 거쳐 근현대 로마 카톨릭 신학에서 중요성을 강화해 온 마리아의 위치를 대변한다. 1854년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가 교황청의 인준을 받았고, 1954년에는 마리아 몽소승천 교리의 확정으로 "하늘의 여왕(Regina Caeli)"으로 불리게 되었다.

"The most blessed Virgin Mary was from the first moment of her conception, by a singular grace and privilege of almighty God and by virtue of the merits of Jesus Christ. Savior of the human race, preserved immune from all stain of original sin."

"Since we are convinced, after long and serious reflection, that great good will accrue to the Church if this solidly established truth shines forth more clearly to all, like a luminous lamp raised aloft, by Our Apostolic authority We decree and establish the feast of Mary's Queenship, which is to be celebrated every year in the whole world on the 31st of May."

나아가 이 영화가 보여주는 마리아와 예수 사이의 교감은, 로마카톨릭 신학 마리아論의 제 5번째 교리가 될 것으로 보여지는 "마리아, 우리의 공동구속자(Co-Redemptrix), 모든 은총의 중개자(Mediatrix of All Graces), 협조자(Advocate)" 교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교리는 19세기부터 교황들의 지지들 받아왔고, 최근에는 테레사 수녀가 요한-바오로 2세에게 교황무오권을 발동해 공식교리로 인준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With equal truth may it be also affirmed that, by the will of God, Mary is the intermediary through whom is distributed unto us this immense treasure of mercies gathered by God, for mercy and truth were created by Jesus Christ. Thus as no man goeth to the Father but by the Son, so no man goeth to Christ but by His Mother."

배우인 마이아 모르겐스턴은 유대인이다. 공교롭게도 그의 성 Morgenstern은 영어로 moerning star(샛별)을 뜻한다. 이 호칭은 로마카톨릭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붙이는 공식호칭 가운데 하나다. 최근 인터뷰를 보면 배우 마이아 모르겐스턴은 이 점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멜 깁슨은 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캐스팅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 여인들 : 막달라 마리아

또 한가지 로마 카톨릭적 해석을 가한 인물은 골고타까지 따라가는 막달라 마리아이다. 요한복음서에 보면 예수의 십자가 아래 있었던 사람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이름이 거명되고 있지 않은 예수의 이모, (예수의 제자인) 글레오파의 아내인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여자 마리아 그리고 예수의 사도인 요한이었다. 마리아,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미리암과 마리암은 유대인 대중들에게 사랑받던 전통적인 이름이었다. 그런만큼 여러 명의 마리아가 복음서에 등장한다.

등장인물의 과거경험을 플래쉬백으로 처리하고 있는 이 영화 속에서, 이 막달라 마리아는 유대인들이 돌로 쳐 죽이려고 하다가 예수가 유명한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이 여인을 먼저 돌로 쳐라"라는 말로 구원해 낸 그 간음한 여인으로 해석하고 있다. 복음서에는 이 여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으므로 그 여인이 이 막달라 마리아인지는 매우 불분명하다. 그런데 내 판단으로 이 간음한 여인, 혹 창부는 십자가 아래에 있던 그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루가가 기록한 복음서에서는 일곱귀신에 들렸다가 예수가 구해준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라고 분명히 적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6세기 말의 한 설교에서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여러 마리아를 한 명으로 보는 해석을 내었고, 그 결과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 귀신들렸던 마리아, 그리고 간음했던 여인 등을 모두 한 사람 "막달라 마리아"로 보는 해석이 20세기까지 로마 카톨릭의 공식적 해석이 되었다. 1969년 로마교황청은 이 해석을 번복/취소했지만, 막달라 마리아를 간음한 창부로 해석하려는 전통은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있다. 멜 깁슨의 이 영화는 18세기에 출판된 에머리히 수녀의 환상집의 설명을 상당히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 속의 막달라 마리아는 간음한 창부와 동일인으로 그려진다.

막달라 마리아는 (기독교 이단인) 그노시그 문헌과 중세전설에서 때로는 성녀로, 때로는 창녀로, 예수의 아내로, 때로는 소피아의 화신으로 끊임없이 재등장할 것이다. 여신이 없는 기독교에 처음으로 여성화된 신격을 결합시키기 시작한 것은 2-4세기의 그노시스였는데, 이들은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아니라 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그노시스의 핵심 인물인 소피아를 투사했다. 최근 막달라 마리아가 교회 역사에서 오랫동안 무시된 것이 남성 위주의 교회 내 여성 억압에세 기인했다는 주장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나는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노시스가 정통 기독교보다 더 근본적인 기독교였다는 논리를 펴는 경향을 보인다. 즉, 보다 여성적 기독교가 본래적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노시스들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문서 가운데 하나인 {도마복음서}에 따르면, 그들의 설명과는 약간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도마복음서의 원문은 20세기에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굴되었다.)

아래는 위경 {도마복음서}의 가장 마지막 구절이다. 사실 도마복음서는 페미니즘을 말하기는 커녕, 여자가 남자가 변화함으로써만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수의 선언으로 종결된다. 그렇다면 도마복음서는 과연 페미니즘적 기독교를 가르치고 있다는 친-그노시스적 작가들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위의 주장을 하는 그룹들은 의도적으로 {도마복음서}의 이 부분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114 Simon Peter said to them: Let Mary go forth from among us, for women are not worthy of the life. Jesus said: Behold, I shall lead her, that I may make her male, in order that she also may become a living spirit like you males. For every woman who makes herself male shall enter into the kingdom of heaven.

시몬 베드로가 (다른 사도들에게) 말했다. “ 여자는 영생을 누릴 자격이 없으니, (막달라 마리아를) 우리 가운데서 내보내자.” 그러자 예수가 말했다. “보아라, , 그녀 또한 너희 남자들 처럼 생령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마리아를 이끌어 남성으로 만들것이다. 자신을 "남성"으로 만드는 "모든 여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위경 {도마복음서}/ 번역: 최광민 http://www.carm.org/lost/thomas.htm

결과적으로 막달라 마리아로 반영되던 "여성"성은, AD 4-5세기 동안의 논쟁을 거쳐 최종적으로 칼케돈 공의회에서 마리아를 공식적으로 테오토코스(Theotokos/Mother of God)으로 부르게 됨으로써 성모 마리아의 "모성"으로 대체되었다.




§§ 여인들 : 베로니카

골고타로 가는 길에서 예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는 여인 베로니카는 복음서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지만, 로마 카톨릭의 전통에서 성녀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베로니카에 대한 이야기는 두가지 비잔틴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그 하나는 현재 아르메니아에 해당하는 에데사 왕국의 압가르 우차마(Abgar Ouchama) 왕에 대한 전설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르메니아가 국가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첫 왕국이라는 점에 매우 자부심을 가지는데, 그 이야기의 근거는 바로 이 에데사의 압가르왕에 대한 전설과 직결되어 있다. 그가 예수와 나누었다는 편지는 오랫동안 에데사 왕국의 문서보관실에 보관되어 일반에게 열람되었다는 4세기의 교회사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그리고 훨씬 후대문서인 이 적고 있다. 아래는 4세기 교회사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가 인용하는 예수와 압가르왕 사이의 서신이다.

 http://www.ccel.org/fathers2/NPNF2-01/Npnf2-01-06.htm#P892_442449

- 에데사왕 압가르가 아나니아를 통해 예수에게 보내는 편지. (Copy of an epistle written by Abgarus the ruler to Jesus, tend sent to him at Jerusalem by Ananias the swift courier.)

"Abgarus, ruler Of Edessa, to Jesus the excellent Saviour who has appeared in the country of Jerusalem, greeting. I have heard the reports of thee and of thy cures as performed by thee without medicines or herbs. For it is said that thou makest the blind to see and the lame to walk, that thou cleansest lepers and castest out impure spirits and demons, and that thou healest those afflicted with lingering disease, and raisest the dead. And having heard all these things concerning thee, I have concluded that one of two things must be true: either thou art God, and having come down from heaven thou doest these things, or else thou, who doest these things, art the Son of God. I have therefore written to thee to ask thee that thou wouldest take the trouble to come to me and heal the disease which I have. For I have heard that the Jews are murmuring against thee and are plotting to injure thee. But I have a very small yet noble city which is great enough for us both."

- 예수가 아나니아를 통해 에데사왕 압가르에게 보내는 편지.

"Blessed art thou who hast believed in me without having seen me. For it is written concerning me, that they who have seen me will not believe in me, and that they who have not seen me will believe and be saved. But in regard to what thou hast written me, that I should come to thee, it is necessary for me to fulfill all things here for which I have been sent, and after I have fulfilled them thus to be taken up again to him that sent me. But after I have been taken up I will send to thee one of my disciples, that he may heal thy disease and give life to thee and thine."

이 전설에서 나병으로 고생하던 에데사의 왕 압가르는 유대아로 신하를 보내, 예수가 자신을 방문해서 병을 고쳐줄 것을 요청했는데, 예수가 부활한 후 예수의 사도인 도마는 다른 사도 유다 다대오를 압가르에게 보내 그의 병을 고쳤고 이로써 에데사는 처음으로 국가적으로 개종한 첫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5세기의 문서 {아다이(다대오)의 가르침}에서 다대오는 "매우 특별한 것으로 그려진" 예수의 이미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또 6세기의 문서인 {아다이 행전/Acts of Addai}에 따르면 그 얼굴은 수난의 도상에서 천으로 피묻은 얼굴을 닦을때 찍혀나온 것으로 암시되어 있다.

이 천을 그리스어로 tetratripion이라 불렀고 그 이미지를 Madylion이라 불렀다. 이 진품 초상화를 라틴어로는 "vera icon" 불렀는데, 후대로 가면서 수난 도상에서 한 여인이 예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줄때 예수의 피묻은 얼굴이 그 수건에 새겨졌다는 전설과 합쳐지면서, "베라 이콘"에서 "베로니카"라는 그 여인의 이름이 발생했다는 민간전설이 전한다.

이 영화에서 베로니카는 수난과정 중에 상당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부분 역시 Anne Catherine Emmerich 수녀의 기록을 따른 것이라 보인다. 에머리히 수녀의 환상집에서는 이때 예수의 얼굴을 닦아주었다는 전설의 여인의 이름을 "세라피아/Seraphia"라고 부르고 있다.




§§ 여인들 : 클라우디아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빌라도의 아내 클라우디아 역시 영화의 전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사실상 복음서 속에 빌라도의 아내는 다만 악몽을 꾸고나서 빌라도에게 예수를 처형하지 말것을 애원한 무명의 인물로만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 영화 속의 클라우디아는 예수의 수난과정에서 매우 역동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그녀는 빌라도에게 예수를 처형하지 말 것을 청원하는 동시에, 예수가 채찍질 당하는 동안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여러 장의 린넨을 직접 전해주었고,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는 이 수건으로 형장에 흥건한 예수의 피를 닦는다. 이 내용 역시 복음서가 아닌 Anne Catherine Hemmerich 수녀의 환상집에서 따온 것이다. 클라우디아의 교회전통상 지위와 그의 역할에 대해서는 각각 빌라도와 사탄에 대한 부분에서 다시 언급해 보겠다.


§§ 사탄

영화 속에서 사탄은 중성적이지만 때로 여성적 이미지로 등장한다. 특히 수난과정 중에 아이를 안고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 아이를 안고 나타나는 사탄은 중세부터 내려오는 적-그리스도(anti-Christ)의 컨셉을 표현하고 있다. 이 모티브는 삼위일체에 대한 사탄적 모방을 말한다. 즉, 사탄은 삼위일체를 모방해 성부를 사탄에, 성자를 적-그리스도에, 그리고 성령을 악령(Demons)에 적용한다. 그래서 사탄이 안은 아이는 바로 적-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물론 이 모티브 역시 복음서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탄적 삼위일체에 대한 컨셉은 종말론적 모티브가 강하게 지배하던 유럽의 중세기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주어왔다.

영화 속에서 (그리고 복음서에서) 예수의 수난과정에 관련된 사탄의 역할은 다소간 혼란스럽다. 사탄은 예수를 죽이고자 한 것인가? 아니면 예수가 죽음을 택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일까?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삶은 궁극적으로 인류를 대신해 희생물이 되는데 촛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잡혀가는 마지막 날 예수는 자신이 당할 수난을 저지하려던 베드로에게 "사탄아, 뒤로 물러나라"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때 사탄의 목표는 예수가 죽음을 선택하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빌라도에게 예수를 죽이도록 청원하게 만든 (그래서 예수의 사형을 피하게 만들 수 있었던) 빌라도의 아내(클라우디아)가 꾼 꿈 역시 예수의 죽음을 무산시키려고 사탄이 충동한 꿈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동시에 사탄은 가룟 유다를 충동해 예수를 배반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사탄은 예수의 죽음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사탄의 이 두가지 행동은 일견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찌보면 사탄은 도대체 예수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혹은 예수의 아이덴티티 자체, 혹은 목적에 대해 분명히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수를 죽여야 하는 것인지, 죽지 않게 해야 하는지를 두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다. 또 달리보면 사탄의 목적은 초지일관 분명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목적이란 결국 예수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을 주변장치들을 조성하는 것이다. 가룟 유다, 유대종교지도자, 로마군을 통해 비롯되는 일련의 공포장치를 마련하여 예수가 죽음을 선택하지 못하게 무언의 압력을 가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피조물이 주는 모욕을 참지 못한 신의 아들이 성부의 뜻을 거스르게 하기 위해 일련의 장치를 마련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이 해석한 사탄과도 일부 유사하다.

이 영화는 이런 사탄의 심리를 중성적인 얼굴의 무표정한, 그러나 수난 당하는 예수의 행보를 매우 호기심있게 훑어가고 있는 사탄의 표정묘사로 매우 잘 그려내고 있다. 사탄은 매 단계마다 예수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를 지켜본다. 하지만 결국 사탄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신의 큰 극본 속에서 자신이 행동하고 있었음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탄 뿐 아니라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 예수를 죽이는데 앞장 선 가야파, 십자가형을 언도한 빌라도, 그리고 로마군과 흥분한 군중들 역시 자신들이 하는 일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예수는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며 군중에 대한 신의 용서를 구하며, 예수가 죽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된 사탄은 아뷔소스, 즉 무저갱에 떨어져 울부짖는다.




§§ 사도들

복음서에서 수난과정 동안 등장하는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등장하는 인물은 12명 가운데 단 3명이다. 하나는 재판과정 중 예수를 3번 부인하는 베드로, 그리고 여인들과 함께 예수의 임종을 지킨 요한, 그리고 예수를 배신하고 자살한 가룟 유다(유다 이스카리옷) 뿐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오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요한이다.

그런데 영화 속의 요한의 연기는 대단히 실망스럽다. 복음서와 서신들에서 "사랑"을 누누히 강조하던 요한은, 후대에 바로 그 즐겨쓰던 "사랑"이란 단어로 인해 매우 부드러운 사람이었을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또 많은 문학작품과 영화에서 그렇게 그려졌다. 그러나 복음서에 따르면 그의 별명은 그리스어로 "보아너게스" 즉 "천둥의 아들"이었다. 그는 수제자이던 베드로와 안드레를 비롯해 나머지 제자들이 다 도망간 와중에도 예수의 어머니,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예수의 이모와 함께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가 임종을 지킨 유일한 사도였다.

AD 2세기의 교부 이레네우스는 그의 스승이자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카포스를 통해 들었던 말년의 요한에 관한 기록을 적고 있다. 기록을 통해 본다면, 요한은 아마 그 기질이 매우 강하고 다혈질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실상 그의 성격은 그가 남긴 한 권의 복음서와 3권의 서신과 한 권의 예언서에도 잘 나타나있다. 그가 줄기차게 말하는 "사랑"이란, 야들야들한 감성적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각오한 강한 의지의 사랑을 말했기 때문이다.




§§ 폰티우스 필라투스, 빌라도

AD 1세기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의 저술에서 티베리우스 황제 때 크리스투스/그리스도를 처형한 유대아의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에 대해 아주 짧게 기록하고 있다.

"Hence to suppress the rumor, he [Nero] falsely charged with the guilt [setting the fire of Rome], and punished with the most exquisite tortures, the persons commonly called Christians, who were hated for their enormities. Christus, the founder of the name, was put to death by Pontius Pilate, procurator of Judea in the reign of Tiberius: but the pernicious superstition, repressed for a time, broke out again, not only through Judea, where the mischief originated, but through the city of Rome also."

이 영화에서 가장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은 부분은 로마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이하, 빌라도)에 대한 묘사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영화가 해석한 빌라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영화 속의 빌라도는 왠지 철학적 깊이를 가진 진지한 사내로 그려지고 있다.

이런 윤색은 빌라도가 나중에 기독교로 개종하였거나 혹은 기독교에 동정적인 자세로 돌아섰다는 일련의 전설과 위경들을 통해 축적되어온 해석이다. 가령, 초기 기독교 사회에 유통되던 위경 {빌라도 행전/니코데무스 복음서} 같은 문서들이 그런 예에 속한다. 이 문서는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내가 어렸을 때 교회에서 연극으로도 많이 연출되었던 적이 있다. 물론 이 문서는 위작이다. 하지만 이 문서는 많은 지중해 지역 교회들이 빌라도와 그의 아내가 결국 기독교도가 되었다는 전설을 남기게 되었고, 에티오피아 정교회와 동방정교회는 빌라도와 그의 아내 클라우디아 프로쿨라에게 성인의 지위를 부여했다.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actspilate.html

그러나 예수 당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유대인 철학자 필론은 빌라도를 충동적이고, 무자비하고, 고집센 사람으로 묘사해 두었다.

"...(Pilate) was afraid that if they really sent an embassy, they would bring accusations against the rest of his administration as well, specifying in detail his venality, his violence, his thefts, his assaults, his abusive behavior, his frequent executions of untried prisoners, and his endless savage ferocity...” http://www.earlyjewishwritings.com/text/philo/book40.html

또한 AD 70년 로마군단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을 실제로 체험하고 로마로 귀화한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유대전쟁사}와 {유대고대사}에서 빌라도의 인격과 통치방식에 대해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On a later occasion he provoked a fresh uproar by expending upon the construction of an aqueduct the sacred treasure known as Corbonas; the water was brought from a distance of seventy kilometers. Indignant at this proceeding, the populace formed a ring round the tribunal of Pilate, then on a visit to Jerusalem, and besieged him with angry clamor. He, foreseeing the tumult, had interspersed among the crowd a troop of his soldiers, armed but disguised in civilian dress, with orders not to use their swords, but to beat any rioters with cudgels. He now from his tribunal gave the agreed signal. Large numbers of the Jews perished, some from the blows which they received, others trodden to death by their companions in the ensuing flight. Cowed by the fate of the victims, the multitude was reduced to silence.." http://www.earlyjewishwritings.com/text/josephus/war2.html

"He spent money from the sacred treasury in the construction of an aqueduct to bring water into Jerusalem, intercepting the source of the stream at a distance of thirty-five kilometers. The Jews did not acquiesce in the operations that this involved; and tens of thousands of men assembled and cried out against him, bidding him relinquish his promotion of such designs. Some too even hurled insults and abuse of the sort that a throng will commonly engage in. He thereupon ordered a large number of soldiers to be dressed in Jewish garments, under which they carried clubs, and he sent them off this way and that, thus surrounding the Jews, whom he ordered to withdraw. When the Jews were in full torrent of abuse he gave his soldiers the prearranged signal. They, however, inflicted much harder blows than Pilate had ordered, punishing alike both those who were rioting and those who were not. But the Jews showed no faint-heartedness; and so, caught unarmed, as they were, by men delivering a prepared attack, many of them actually were slain on the spot, while some withdrew disabled by blows. Thus ended the uprising..." http://www.earlyjewishwritings.com/text/josephus/ant18.html

역사에 따르면 실제로 빌라도는 유대인의 정서를 무시하고 티베리우스 황제의 초상을 예루살렘에 배치하여 발생한 폭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복음서에도 그가 갈릴리인들의 살육한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빌라도는 이 일로 황제로부터 한두 차례 경고조치를 받은 바 있다. 빌라도는 나중에 사마리아인들과의 충돌로 야기된 살육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리아 총독 비텔리우스에 의해 직위해제된 후 티베리우스에게 보고하기 위해 로마로 송환되었다. 이것이 공식 역사에 남은 그의 이야기이다.

빌라도는 부적절한 조치로 불필요한 폭동을 야기한데 대해 티베리우스 황제로부터 이미 경고조치를 받은 바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사형건에 대해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았다. 만약 예수에 대한 기소를 접수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폭동이 재발할 경우, 그의 정치적 입신에 큰 지장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빌라도가 예수를 풀어줄 의도를 가진 것은 아마도 사실이겠지만, 폭동이 우려되자 아주 신속하게 처형을 집행했다. 비록 대제사장이 "예수의 피를 유대인들에게 돌리겠다"고 말했고, 빌라도는 자신은 무관하다고 손을 씻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초기 3세기 동안 기독교도들이 빌라도에 대해 내린 평가는 차가왔다. AD 4세기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는 그의 자살에 대해 신의 복수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빌라도는 칼리귤라 황제때 탄핵받아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가 티베르 강에 투신자살한 이야기는 나중에 {Mor Pilati}라는 중부 유럽의 전설이 되었다

It is worthy of note that Pilate himself, who was governor in the time of our Saviour, is reported to have fallen into such misfortunes under Caius, whose times we are recording, that he was forced to become his own murderer and executioner; and thus divine vengeance, as it seems, was not long in overtaking him. This is stated by those Greek historians who have recorded the Olympiads, together with the respective events which have taken place in each period.324 --- {교회사} 7장

복음서에 등장하는 빌라도의 성격에 대한 재구성이 힘든 이유는 예수와 빌라도 간의 대화로 알려진 복음서의 기록이 매우 간결하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라틴어로 예수를 취조하면서 예수 스스로 자신을 구명하라고 하지만, 예수는 자신을 변호할 생각은 안하고 그저 자신이 진리(veritas)를 전하려 왔을 뿐이라는 이야기만 한다.

그러자 빌라도는 되묻는다.

"Quid est veritas (진리가 무엇이냐?)"

여기서 빌라도의 이 말이 가지는 뉘앙스는 불분명하다. 멜 깁슨의 묘사에서 처럼 빌라도는 과연 철학적/종교적 관심을 가지고 "진리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물었던 것인가? 아니면 예수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며 "흥, 그래서 니가 말하는 진리가 뭔데?"라고 물은 것인가? 이어지는 복음서의 내용을 본다면 빌라도의 반응은 후자에 가깝다. 그래서 아마도 예수를 무해한 과대망상가 정도로 여겼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시니컬한 빌라도 해석은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영화 {나사렛 예수}에서 로드 스티거(Rod Steiger)의 신경질적인 연기로 잘 표현된다.




§§ 유대인들, 로마병사에 대한 묘사

내가 이 영화의 가장 큰 결점으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예수를 반대하던 인물들에 대한 묘사이다. 이 영화에서 예수를 기소한 사람들, 골고타까지의 도상에서 예수를 모욕하던 사람들, 그리고 예수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매다는 로마병사들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실망스럽다. 이 영화는 두 부류의 인간을 나누고 있다. 한 측은 예수를 모독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한 편은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다. 전자의 인물들의 얼굴은 일그러진 추한 얼굴을 가지고 있고, 상당수는 장애자들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악마나 마녀들 같이 괴성을 질러댄다. 그런가 하면 예수를 채찍질하고 못질하는 로마병사들은 하나같이 불필요할 정도로 새디스트로 묘사되었다. 그에 비해,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복색부터가 다르고 얼굴은 하나같이 고상하고 숭고하게 묘사되어 있다.

바로 이런 묘사가 이 영화를 반유대주의적으로 보여지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다. 이 영화는 이런 이분법적 대비를 통해 선과 악을 극명하게 구분해 보이고자 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복음서 속의 예수가 얼마나 사회의 소외받던 병자와 창녀와 세리에게 가까이 다가갔는 지를 기억한다. 복음서 속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은 어디서나 존경받던 거룩한 인물들이 아니라 천대받고 소외받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수난을 보여주던 길 어디에도 장님이었던 바디메오, 유대인들에 배척받던 세리 삭개오, 예수가 치료해주었던 문둥병환자들은 없었다. 이런 영화의 묘사가 과연 복음서와 비교해 타당하다고 말해야 할까?




§ 총평

멜 깁슨이 오래 전부터 이 영화에 영어가 아닌 AD 1세기의 언어인 히브리어, 아람어, 라틴어를 사용하는 등 현실감에 최고의 목표를 둘 것이라고 공언해왔고, 나는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AD 33년 경의 예루살렘에 돌아가는 경우 보게될 장면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무미건조하게 재현해 주길 진심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나의 그런 기대와 달리 (감동을 유도하는) 과다한 헐리우드적 음악과 헐리우드적 돌발요소와 드라마틱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아마도 멜 깁슨은 일반 대중의 기호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혹은 본인 스스로가 헐리우드적 연출에 너무 익숙해서일까? 멜 깁슨이 원래의 구상을 수정해 헐리우드적 연출을 그렇게 많이 도입하지만 않았다면, 이 영화는 더 큰 찬사를 받는 명작이 될 수 있었을 지 모른다. 이 영화는 비록 잘 만들어진 영화지만, 더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있었음에도 기대에는 다소 못미치는 준작이 되어 버렸다는 점은 무척 아쉽다.

여전히 나에게는 제피렐리의 {나사렛 예수}가 최고의 영화로 남는다.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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