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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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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배신자 유다 vs. 聖 유다: 그노시스 위경 {유다 복음서}의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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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6-04-11

저작권(© 최광민)이 명시된 글들에 대해 저자의 동의없는 전문복제/배포 - 임의수정 및 자의적 발췌를 금하며, 인용 시 글의 URL 링크 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목

{유다복음서}를 읽는 문맥

순서
  1. 브루투스와 유다
  2. 코덱스 차코스
  3. 카인파 그노시스
  4. "네가 할 일을 속히 하라"
  5. 그노시스 복음서 내부의 비일관성

# 브루투스와 유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원추형으로 아래로 갈 수록 좁아지는 지옥에서도 가장 죄질이 나쁜 자들이 들어가는 가장 밑바닥에는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와 율리우스 카에사르를 살해한 브루투스 (그리고 그의 사촌 카시우스 롱기누스)가 함께 루치페르에 의해서 잘근잘근 씹히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가령 이런 식?


가롯 유다와 브루투스가 동급이라니!

어찌보면 부르투스에게 영광(혹은 모독)이고, 어찌보면 유다에게 영광(혹은 모독)이다. 일개 로마의 한 '시민'을 암살한 브루투스와 '신의 아들'을 살해하는데 공모한 유다가 같은 등급에 오른 것은, 브루투스에게는 영광이요 유다에게는 모욕이다. 반면, '로마공화국'의 정체를 지킨다는 대의명분으로 카이사르를 살해한 브루투스와 (헌금을 착복하다가 급기야) 은화 30전에 스승을 판 유다가 동급에 오른 것은, 유다에게는 대단한 영광이지만 브루투스에게는 가없는 모욕이다.

아무리 '황제파'였다지만, {신곡}에서는 단테가 꽤 오버했다는 생각.



# 코덱스 차코스

{코덱스 차코스 , Codex Tschacos}이라는 것이 있다. 이 코덱스는 1980년대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첫 공개된 것으로, 여러 골동품 밀매경로를 거쳐서 스위스까지 흘러들어왔다. 비록 발굴은 1970년대 이집트 엘-미냐에서 이뤄졌으나, 1983년 첫 공개 이후 2001년까지 검증이나 번역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코덱스에 수록된 AD 3세기 경의 그노시스 문서들은 이집트 꼽트어로 씌여졌으며, {야고보 계시록 I}, {베드로가 바울에게 보낸 서신}, {알로게네스}, 그리고 {(가롯)유다복음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의 그노시스 문헌처럼 원전은 그리스어로 씌여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Codex Tschacos, (source: Wikimedia Commons)

이 중에서 {유다복음서}는 {다빈치코드}의 영화개봉에 맞춰 2006년 4월부터 전격적인 시판에 들어갔다.


이 책이 출판된다는 말에, {다빈치 코드}등에 경도된 사람들은 이 문서에 기존의 4개의 "정경" 복음서를 뒤집을 만한 어떤 획기적 내용이 들어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럴 수도.

그러나 우선 이 문서를 사용한 그룹이 어떤 그룹의 그노시스였는지 알아보는 것이 우선 순위다. 강조해서 말하지만, 소위 "그노시스" 혹은 "영지주의자"로 불리는 AD 1-4세기의 그룹들은 절대 하나의 단일한 교리체계를 가진 그룹들이 아니라 매우 이질적인 다양한 그룹들의 총합이다.

# 카인파 그노시스

이 {유다복음서}는 원래 AD 2세기 교부인 루그두눔 (=리옹) 주교 이레네우스의 저작 {이단을 반박하며, Against Heresies}의 제 1권 31장에 그 이름과 대략의 내용이 인용되어 있었다. 그 인용에 따르면, 이 문서는 그노시스의 한 파인 "카인파 (Cain派, Cainites)"에서 사용되었다.

그럼 이 "카인파"는 어떤 사람들인가?

이 계열의 그노시스들은 일반적으로 "semi-maltheist"라고 불린다. "maltheist"란 창조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믿되, 그 신은 "악"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semi-, 준-"가 붙으면 이 말은 "하급 영"으로 물질세상을 창조한 그 "유대교의 신" 여호와/야훼 (얄다바오트라고 종종 불린다)는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믿지만, 사실상 예수가 말하는 그 신은 {구약성서} 속의 그 신보다 훨씬 상위차원의 선신 (종종, 소피아, 아브락사스 같은 이름들로 불린다.) 이라고 상정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많은 그노시스들이 "신", "소피아", "원천" 이라고 말할 때의 그 신은, 유대인의 신이자 물질의 창조자인 여호와/야훼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그노시스들이야말로, 플라톤의 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유대인의 신 야훼는, 즉 플라톤/플로티노스적 우주에서의 물질의 창조자 데미우르고스와 동급이었다. 아울러, 이 부류의 그노시스들에게 있어, 예수가 아람어로 "아바", 즉 '아버지'라고 불렀던 그 존재 역시 '야훼'일 수 없다.

카인파의 이런 세계관으로부터 즉각적으로 다음의 결론을 유도할 수 있다: 즉, {구약성서}에서 야훼에 대항했던 인물들, 그래서 {구약성서}가 정죄하고 있는 인물들이 사실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었다는 점. 그래서 카인-아벨, 에서-야곱, 코라-모세, 소돔사람들-아브라함 등의 인물들이 {구약성서}에서는 악-선의 대립구도를 이루고 있는 반면, 이들 카인파 그노시스에서는 정반대로 선-악을 대표하게 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등장하는 카인/아벨의 해석은 바로 이 카인파의 궤적을 따르고 있다.

이 맥락을 이해해야만 왜 {유다복음서}가 가롯유다에게 그리도 온정적인지 이해할 수 있다. {유다복음서} 속의 유다는 사실상 "聖 유다"이다.



갈리아 리그두눔 (=리옹)의 주교 이레네우스(circa 130-202, AD)의 {이단을 반박하며}에서 발췌한다. http://www.ccel.org/fathers2/ANF-01/anf01-58.htm#P6707_1623941

1. Others again declare that Cain derived his being from the Power above, and acknowledge that Esau, Korah, the Sodomites, and all such persons, are related to themselves. On this account, they add, they have been assailed by the Creator, yet no one of them has suffered injury. For Sophia was in the habit of carrying off that which belonged to her from them to herself. They declare that Judas the traitor was thoroughly acquainted with these things, and that he alone, knowing the truth as no others did, accomplished the mystery of the betrayal; by him all things, both earthly and heavenly, were thus thrown into confusion. They produce a fictitious history of this kind, which they style the Gospel of Judas.

다른 자들은 다시 말하길, 카인은 천상의 권능자로부터 왔다고 선언하며, 에서나 코라나 소돔 사람들이나 그런 류의 인간들은 서로 같은 부류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들은 이 사람들이 창조주로부터 공격을 받았음에도 어느 누구도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소피아는 원래 본인에게 속했던 것을 그들에게서 분리해 그녀에게로 돌려 놓았다. 그자들은 선언하길, 배신자 유다는 철저히 이 모든 내용들을 알고 있었고, 사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유다 혼자만 진리를 알았기에 배신이라는 신비를 완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유다에 의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식의 공상적인 역사를 지어내 {유다 복음서}란 형태로 만들어 냈다.  / 번역: 최광민

2. I have also made a collection of their writings in which they advocate the abolition of the doings of Hystera.Moreover, they call this Hystera the creator of heaven and earth. They also hold, like Carpocrates, that men cannot be saved until they have gone through all kinds of experience. An angel, they maintain, attends them in every one of their sinful and abominable actions, and urges them to venture on audacity and incur pollution. Whatever may be the nature of the action, they declare that they do it in the name of the angel, saying, “O thou angel, I use thy work; O thou power, I accomplish thy operation!” And they maintain that this is “perfect knowledge,” without shrinking to rush into such actions as it is not lawful even to name.

나는 그들이 '휘스테라'의 해온 일을 소멸시킨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그들의 저작물들을 수집해 왔다. 그들은 이 '휘스테라'를 천지의 창조자라고 부른다. 또한 그들은 마치 카르포크라테스의 주장처럼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경험을 겪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온갖 죄악과 혐오스런 행위들을 저지를 때마다 천사가 그걸 지켜보면서 그런 짓을 당당히 저지르도록 격려하고 타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후략)  / 번역: 최광민

3. It was necessary clearly to prove, that, as their very opinions and regulations exhibit them, those who are of the school of Valentinus derive their origin from such mothers, fathers, and ancestors, and also to bring forward their doctrines, with the hope that perchance some of them, exercising repentance and returning to the only Creator, and God the Former of the universe, may obtain salvation, and that others may not henceforth be drawn away by their wicked, although plausible, persuasions, imagining that they will obtain from them the knowledge of some greater and more sublime mysteries. But let them rather, learning to good effect from us the wicked tenets of these men, look with contempt upon their doctrines, while at the same time they pity those who, still cleaving to these miserable and baseless fables, have reached such a pitch of arrogance as to reckon themselves superior to all others on account of such knowledge, or, as it should rather be called, ignorance. They have now been fully exposed; and simply to exhibit their sentiments, is to obtain a victory over them.

4. Wherefore I have laboured to bring forward, and make clearly manifest, the utterly ill-conditioned carcase of this miserable little fox.2984 For there will not now be need of many words to overturn their system of doctrine, when it has been made manifest to all. It is as when, on a beast hiding itself in a wood, and by rushing forth from it is in the habit of destroying multitudes, one who beats round the wood and thoroughly explores it, so as to compel the animal to break cover, does not strive to capture it, seeing that it is truly a ferocious beast; but those present can then watch and avoid its assaults, and can cast darts at it from all sides, and wound it, and finally slay that destructive brute. So, in our case, since we have brought their hidden mysteries, which they keep in silence among themselves, to the light, it will not now be necessary to use many words in destroying their system of opinions. For it is now in thy power, and in the power of all thy associates, to familiarize yourselves with what has been said, to overthrow their wicked and undigested doctrines, and to set forth  doctrines agreeable to the truth. Since then the case is so, I shall, according to promise, and as my ability serves, labour to overthrow them, by refuting them all in the following book. Even to give an account of them is a tedious affair, as thou seest.2985 But I shall furnish means for overthrowing them, by meeting all their opinions in the order in which they have been described, that I may not only expose the wild beast to view, but may inflict wounds upon it from every side.  --- Chapter XXXI.—Doctrines of the Cainites.




# "네가 할 일을 속히 하라"

자, 그럼 이제 예수의 시대로 이 구도를 확장해 본다. 

카인파 그노시스에게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실제로는 예수의 의도를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 "스승을 배반하는 악역을 스스로 맡음으로써 구원의 예언을 성취시킬" 자신의 몫을 충실히 이행하였으므로 사실은 축복을 받을 인물이 된다.

가령, 정통파 복음서인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최후의 만찬장에서 예수는 그 자리에 앉아있던 유다에게 말한다. ({요한복음서} 13장)

"가서 네가 할 일을 속히 하라."


이때 예수의 다른 제자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예수가 가롯 유다에게 무슨 심부름이라도 시키는 줄로만 알았던 듯 하다. 정통적 해석에서는 {복음서}에서 예수가 이 말을 하기 직전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말함으로써, 유다의 행위는 사실상 악이었으며 예수가 한 말은 바로 그 악행의 개시점을 지목했을 뿐이라고 풀이한다. 그런데 {유다복음서}의 궤적을 따라가게 되면, 예수와 유다 사이에는 이때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우리는 최후의 만찬장에서 그 순간 유다의 머릿 속에 무슨 생각이 오갔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럼 예수의 이 진술은 {유다 복음서}의 암시처럼 "가서 옳은 일을 속히 시행하라"라는 뜻일까? 그래서 가롯 유다는 사실상 오해를 받고 있는 "의인"일까? 사실 이 진술은 신약성서의 복음서들 속 다른 진술들 만큼이나 이중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이 부분은 그리스도교 교리의 딜레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 누군가 예수를 파는 일은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 그리고 예수는 "죽음으로써" 예언된 구원을 성취시킬 수 있다.
  •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은 "의로운" 일이다.
  • 그리고 유다의 배반은 "그가 할 일"이다.

그럼 유다의 배반은 그런 이유로 "의"로운가? 그건 또 그렇지가 않다. 비록 그 행위의 '결과'가 의롭고 또 구원을 가져왔으나, 그 행위 '자체'는 악하고 저주받을 행위에 해당하게 된다. 비유컨데, 가롯 유다의 행위는 "소 뒷걸음질 치다 쥐잡은 격"이다.



물론 이 해석은 예수와 가롯 유다 사이에 모종의 합의/전략이 있었다고 가정하게 되면 꽤 달라질 수 있다. 이게 바로 {유다복음서}가 취하는 입장이다. 

"배신자" 유다에게 이런 지위를 부여한 것은 카인파 그노시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로 오면서 이런 "매력적인" 윤색은 특별히 문학작품에서도 계속 메아리친다. 가령, 보르헤스의 단편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라든지, 혹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유명한 소설 {그리스도의 최후의 유혹}, 그리고 앞의 두 소설보다 수준은 상당히 떨어지는 아베카시스의 소설 {쿰란}을 읽어보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을 듯. 아무튼 카인파 그노시스의 신관과 세계관을 이해하지 않고서 {유다복음서}를 4개의 정통파 {복음서}와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한 시도란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가롯 유다의 배신이 그가 예수에게서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으나 예수가 그 기대를 져버린데 대한 절망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유다 이스카리옷" 이라는 그의 이름 중 '이스카리옷'이 단도를 뜻한다고 보는 한가지 견해에서 점차 확대해 나가서 결국 그를 정치적 메시아니즘을 추구하던 '젤롯' 출신이라고 해석한데서 온 순수한 '추론'의 하나일 뿐, 복음서 어디에도 이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을 수는 없다. 최소한 정통파 복음서인 {마태/마태오}, {마가/마르코}, {누가/루가}, {요한}복음서들이 묘사하고 있는 가롯 유다에 대한 진술에는 동정의 여지가 조금도 없다. 그 속에 묘사된 가롯 유다는 그저 사악한 배반자이자, 헌금을 유용한 금전적 부정을 저지른 인물로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 그노시스 복음서 내부의 비일관성

"예수가 가장 사랑하던 제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사실상 {유다 복음서}에서 그 가롯 유다는 예수가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여 가장 높은 수준의 비밀을 전수한 사도로 묘사되어 있다. 이 부분은 내가 그노시스 복음서들을 읽을 때마도 재미있으면서도 모순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다빈치 코드}에 인용되어 있는 문서들, 가령 {필립포스 복음서}나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에서 예수가 가장 사랑하여 비밀스런 지식 (즉, 그노시스)를 전수한 인물은 막달라 마리아라고 되어 있다. {도마 복음서}에서는 그 인물이 "도마"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유다 복음서}에서는 그 사람이 "가롯 유다"로 설정되어있다

물론 정통파 복음서인 {요한 복음서}에서의 그 "사랑하시던 제자"는 요한을 말한다. 그러나 그노시스 복음서와 달리, {요한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가 요한에게만 뭔가 특별하고 비밀스런 가르침을 전수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종교적 '비의'는 (그노시스들의 주장처럼) 일반신자들이 아닌 고위 종교엘리트를 위해서만 은밀하게 감춰진 것이 아니라, 공개적인 진리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교가 '현교'라면, 그노시스는 여러 '밀교'들의 총합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물질의 창조자"와 그의 저급한 "물질세계"로 부터 인류를 해방시키 위해 의도적으로 "스승을 배반"하는 악역을 담당해 오명을 뒤집어 쓴 "聖 유다" 였던 것일까?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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