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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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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에큐메니칼 써핑 #1: 마니페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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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05-06-01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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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에큐메니컬 써핑 #1: 마니페스토

이콘 {크리스토스 판토크라토르}, 하기야 소피아 모자이크, 


1. 기독교도, 그리스도인 Χριστιανός

나는 기독교도 가정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꽤 어려서부터 장로교회 (예수교장로회/합동)를 다녔고, 15살 때 장로교단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나 자신의 종교적 아이덴티티를 '장로교도'에 두지않고 그냥 '기독교도' 설정해 왔는데, 그것은 1619년 확정된 칼뱅주의 5대원리인 이른바, T.U.L.I.P. (T - Total Depravity, U - Unconditional Election, L - Limited Atonement, I - Irresistible Grace, P - Perseverance of the Saints)의 몇개 조항 및 기타 몇가지 장로교단의 대표교리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나는 개인의 신앙고백에 기초하지 않은 유아세례의 집행과 성사적 효력에 대해서는 재세례파나 침례교도처럼 회의적이다. 역사적 교회가 이어 온 역사적 전통에 대한 존중과 보존에 대해서는 루터교회(Lutheran)나 성공회(Anglican)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한다. 또한 예정론에 대해서는 쟝 칼뱅의 후계자였던 테오도루스 베자(Theodore Beza)에 의해 확정된 강경한 형태의 supralapsarianism보다는, 16세기에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Jacobus Arminius)가 제창하였고 현재 성공회와 감리교회가 이를 변형해 채택하고 있는 형태의 예지예정론이나 루터의 단일예정설에 조금 동의하는 편이지만 "예정"은 신의 영역이라 보고 신자의 실제적 삶에 있어서 예정론에 그렇게까지 큰 비중을 둘 이유가 없다고 여긴다. 특별히 나는 '통속'적인 예정/자유의지 설명이 신과 피조세계를 둘 다 동일한 '시간 축'에 놓고 풀이하려고 하는데 반대한다. 가령, 신의 '영원'을 우리가 이해하는 식의 시간개념, 즉 '영원한 과거로 부터 영원한 미래를 향해 가는 그 어떤 것'으로 표상하고 이를 신에게 적용하게 되면, 신을 '시공의 창조자'로 간주하는 고대로부터의 전통적 창조/피조 개념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T.U.L.I.P. 5개 신조를 문자 그대로 따르는 "순수한" 장로교인이라는 불릴 수는 없을 것이다.

동일한 논리적 이유로 해서, 나는 순수한 루터교인으로도, 순수한 성공회 신자로도, 순수한 감리교인으로도, 순수한 침례교인으로도, 순수한 재침례교인으로도 불릴 수 없을 것이다. 특정 교단들 사이에 차이를 가져오는 교리/강령에 내가 부분적으로만 동의할 뿐, 결코 전체 세트에 동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이들 교단들의 차이를 가져오는 교리들이 기독교의 핵심교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냥 '기독교도'다.



나는 '프로테스탄트' 기독교도다. 이 말은 내가 로마카톨릭 교회와 정교회를 특징짓는 교리들 가운데 AD 5세기 이후에 공식교리로 확립된 것들에 대해 일부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울러 AD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거의 모든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의 공통 교리인 sola scriptura, sola fide (혹은, 하나 더해서 sola gratia)를 따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나는 아마도 교회/교단일치 운동인 에큐메니즘의 지지자로 다소 간 분류되기는 하겠지만, 현대 자유주의 신학 진영을 "무분별"하게 포용하는 식의 전면적 에큐메니즘이 아닌, AD 4/5세기까지의 전통적인 기독교회의 신조를 공유하는 그룹 간의 제한적 에큐메니즘을 지지하고 역사적인 교회의 신조들 - 가령, 니케아, 칼케돈, 아타나시우스 - 수용하므로, 어쩌면 '보수' 프로테스탄트 기독교로도 분류될 수도 있을 것이다.

AD 2세기 초/중반의 기독교 철학자이자 교부 유스티노스 (AD 100-c165)와, 특별히 AD 2세기 중/후반의 교부이자 예수의 제자 요한의 제자 폴리카포스를 친견한 이레네우스 (?-AD 202)는 그노시스 제파를 강렬히 비판하면서 당시에 이미 확립되어있던 기독교의 정통교리를 정리한다. 이레네우스가 그의 저작 {모든 이단을 반박하며} 제 1권 10장 1절에 요약한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인용해 보자. 이레네우스는 사도들과 그 제자들을 통해, 즉, (최소한) 예수의 제자 요한과 그 제자 폴리카포스를 거쳐 자기에게까지 다음과 같은 기독교의 "정통적" 교리가 전해졌다고 선언한다.

1. The Church, though dispersed through our the whole world, even to the ends of the earth, has received from the apostles and their disciples this faith:

(현재) 교회는 세상 끝까지 널리 퍼져나가 있지만, (예수의) 사도들과 그의 제자들로부터 다음의 신조를 이어받았다:

[She believes]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and the sea, and all things that are in them; and in one Christ Jesus, the Son of God, who became incarnate for our salvation; and in the Holy Spirit, who proclaimed through the prophets the dispensations(6) of God, and the advents, and the birth from a virgin, and the passion, and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and the ascension into heaven in the flesh of the beloved Christ Jesus, our Lord, and His [future] manifestation from heaven in the glory of the Father "to gather all things in one,"(7) and to raise up anew all flesh of the whole human race, in order that to Christ Jesus, our Lord, and God, and Saviour, and King, according to the will of the invisible Father, "every knee should bow, of things in heaven,, and things in earth, and things under the earth, and that every tongue should confess"(8) to Him, and that He should execute just judgment towards all; that He may send "spiritual wickednesses,"(9) and the angels who transgressed and became apostates, together with the ungodly, and unrighteous, and wicked, and profane among men, into everlasting fire; but may, in the exercise of His grace, confer immortality on the righteous, and holy, and those who have kept His commandments, and have persevered in His love, some from the beginning [of their Christian course], and others from [the date of] their repentance, and may surround them with everlasting glory.

교회는 한 분의 신, 즉 전능한 성부이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을 믿는다. 또한 교회는 한 분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 그는 신의 아들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육체를 입으신 분이다. 교회는 또한 한 성령을 믿으며 성령이 신(=성부)의 섭리와, 사랑하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도래와, 성자가 처녀에게서 태어나심과, 그의 수난과, 죽음에서의 부활과, 육체로서 승천하심과, 장차 모든 것을 하나로 모으고 모든 인류를 새로운 육체 가운데 부활시키기 위해 성부의 영광 가운데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것을 예언자들을 통해 선포하셨음을 믿는다.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성부의 뜻에 따라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무릎 꿇고 그를 경배하며, 모든 자들이 그 입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 주님이자 신이며, 구원자이자 왕으로 고백하게 될 것임을 믿는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가 모두를 공정하게 심판할 것과, 악마들과 죄로 타락한 천사들과 거룩하지 않고 불의하며 사악하고 속된 인간들을 모두 함께 영원한 불 가운데 던지실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의 은혜 가운데 살며 정의롭고 거룩하며 신의 계명을 지키고 그의 사랑 안에서 인내한 자에게는 영생을 주실 것과, 또한 처음부터 믿었거나 혹은 참회한 후부터 믿은 신자들을 영원한 영광으로 감싸실 것을 교회는 믿는다.

2. As I have already observed, the Church, having received this preaching and this faith, although scattered throughout the whole world, yet, as if occupying but one house, carefully preserves it. She also believes these points [of doctrine] just as if she had but one soul, and one and the same heart, and she proclaims them, and teaches them, and hands them down, with perfect harmony, as if she possessed only one mouth. For, although the languages of the world are dissimilar, yet the import of the tradition is one and the same. For the Churches which have been planted in Germany do not believe or hand down anything different, nor do those in Spain, nor those in Gaul, nor those in the East, nor those in Egypt, nor those in Libya, nor those which have been established in the central regions(1) of the world. But as the sun, that creature of God, is one and the same throughout the whole world, so also the preaching of the truth shineth everywhere, and enlightens all men that are willing to come to a knowledge of the truth. Nor will any one of the rulers in the Churches, however highly gifted he may be in point of eloquence, teach doctrines different from these (for no one is greater than the Master); nor, on the other hand, will he who is deficient in power of expression inflict injury on the tradition. For the faith being ever one and the same, neither does one who is able at great length to discourse regarding it, make any addition to it, nor does one, who can say but little diminish it.

내가 이미 목도한 바와 같이, 교회는 비록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지만 이 가르침과 이 믿음을 받아 마치 한 집에서처럼 이를 주의깊게 보존해 왔다. 또한 교회는 이 신조들을 마치 하나의 영혼을 가진 양, 마치 하나의 동일한 심장을 가진 양 보존하고 있으며, 이 신조들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또 마치 단 하나의 입을 가진 것처럼 완벽한 조화 가운데 후대에 전수한다. 세상의 언어가 모두 다르지만 교회의 전승은 하나이며 동일하다. 게르마니아에 설립된 교회에서 믿는 것은 히스파니아나 갈리아나 동방이나 이집트나 리비아나 혹은 세상 한 가운데 설립된 교회들이 믿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신의 피조물인 한 태양이 온 세상을 두루 비추는 것처럼, 전파된 진리는 세상을 비추고 있으며 진리를 알기 원하는 사람들을 깨닫게 하고 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지식이 탁월한 자들도 이와 다른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주님보다 더 클 순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도 교회의 전승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믿음은 늘 하나요 동일한 것으로, 그것을 길고 장황하게 논쟁하거나, 거기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이레네우스, {모든 이단을 반박하며} / 번역: 최광민




2. 에큐메니칼 써핑

나의 정체성이 이러한 탓에, 한 교단에 속하거나 한 교회에 속하는 대신, 매주마다 다른 교단의 교회를 방문하기를 즐긴다. 나는 이것을 농담삼아 "에큐메니칼 서핑/ Ecumenical Surfing"이라 부른다. 한국에서는 이런 경험을 하기가 쉽지않다. 한국에서는 기독교 선교역사의 특수성 때문에 장로교 > 감리교 > 침례교 를 제외한 교단의 교회를 동네에서 만나기가 쉽지않고, 그나마도 교단 간의 외형적 차이가 꽤 희석되어 있기 때문이다.

11/12살 때로 기억되는데, 초등부 주일학교 후 전원이 동네의 아파트 단지로 "노방전도"라는 것을 나간 적이 있었다. 한 친구와 함께 기억은 나지않는 어떤 전단지를 열심히 행인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는데, 어떤 양복입은 두 사람이 "근데 장로교와 감리교의 차이가 뭔지는 아니?"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두 사람은 가슴에 이름표는 달지 않았던 걸로 보아 몰몬교 측은 아니고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었던 듯 한데, 아무튼 그 날 이후부터 나는 교회사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교회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 교리사는 덤으로 얻게 되고, 결국은 교리에 따라 갈라서게 된 교단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교단들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는 종종 각 교단의 예배에 참석해서 그들이 역사적으로 보유해온 특이한 예전, 전통, 교리에 대해 주의깊게 관찰해 본다. 가령, 로마카톨릭의 예전과 유사한 루터교회와 성공회의 예전 간의 유사성과 상이점, 성사를 해석하는 차이점, 성사에 있어서의 목사(루터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와 사제(성공회)의 역할의 상이점과 차이점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블루밍턴에서의 에큐메니컬 써핑은 2003년 3월 이라크전 발발과 2003년 6월에 촉발된 미국 성공회의 (동성 배우자와 사는) 동성애자 주교서품 문제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블루밍턴 지역의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인 루터교회, 성공회, 감리교회, 장로교회, 퀘이커, 메노나이트 등을 비롯한 12개 주요교단의 21개 교회를 한 주씩 혹은 여러 주에 걸쳐 방문했으며, 방문한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1) 이라크전과 (2) 동성애에 대한 해당 교회의 입장을 담임목사 혹은 사제 (성공회, 정교회)에게 질문하고 답을 들어봤다. 써핑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년 간 이어졌다.




3. 주의점

나와 같은 써퍼에겐 가끔씩 애매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지만, 대략 두가지 문제점으로 정리될 수 있다.

첫번째 예로는 각 교단이 사용하는 공식신조(credo)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일부 침례교회는 예배 시 어떤 종류의 역사적 신경도 사용하지 않는다. 반면, 장로교회와 감리교회는 {사도신경}을 사용한다. 그런데 교단마다 영어번역이 약간 다르다. 루터교회는 AD 4세기의 {니케아 신경}을 주로 사용한다. 그리고 성공회의 예배에서는 {니케아 신경}을 확대보완한 AD 5세기의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즐겨 복창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칼케돈 신조}나 {아타나시우스 신경}에 표현된 방식처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 / 테오토코스 '라 호칭하는 것에 반대하므로, 이 부분이 오면 대신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속으로) 바꾸어 읽는다. 물론 이것은 신학적이라기 보다는 어감상의 거부감이다. '테오토코스'란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나는 이 문제로 파문당했던 AD 5세기의 네스토리우스의 입장을 다소 지지하는 셈이지만, 이것은 "마리아의 호칭"으로서의 표현상 오해소지가 있다는 것일 뿐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네스토리우스의 견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만약 정교회의 성찬예배에 간다면, {니케아 신경}에 주의해야 한다. 로마 카톨릭은 (그리고 서방에서 유래한 프로테스탄트 교단은) 4세기의 {니케아 신경} 원문에 등장하는 성령에 대한 조항에 "필리오케 / Filioque" 구문을 추가로 삽입했다. 이 문구가 천년 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서로를 이단으로 쌍방파문한 결정적 이유 가운데 하나이므로, 정교회에서 이 신경을 암송할땐 정신이 번쩍든다.

또 한가지는 프로테스탄트 제 교단들의 초기 분열에 결정적 영향을 준 성찬식에서의 성체의 해석문제가 있다.

이 입장 차이로 일부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은 다른 교단의 회원들이 자기 교단의 성찬식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에 일정 정도 제한한다. 가령, 성체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가 "실제적"으로 임재한다고 가르치는(공재론이라 불리는 이 입장은 로마카톨릭의 가르침인 화체설 유사하면서도 다른 입장이기도 하다.) 루터교회나 성공회의 경우는, 그것을 영적임재, 상징 혹은 기념이라고 간주하는 장로교회, 침례교회원이 성체를 받는 것에 대해 약간의 제약을 두고 있다. 나는 그다지 개의치 않지만, 아무튼 각 교단 (혹은 개별 교회)이 타 교단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의 성찬공유를 허락하는가 하는 것을 확인할 필요는 있다. 자칫하면 방문하는 교단의 교회에 결례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찬의 공유 정도가 완전공유(full communion) 수준에 이르르면, 이것은 교단 간의 세부적 교리적 차이는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준-통합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최근 미국 루터교회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ELCA와 미국 성공회는 양자 간 완전공유에 합의했다. 그러나 전통에 충실한 보수적인 루터교 미주리 시노드는 이를 거부한다. 그래서 성찬 참가 전 목사에게 참례해도 될지 문의하는 것이 좋다. 

아마도 이 정도가 써핑 시 주의점이겠다.




4. 관용

이 '써핑'을 통해 나는 프로테스탄트 교단 간의 차이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많이 갖게 되는데, 일반 평신도들에게 있어 교단의 차이는 교리의 근본적 차이라기 보다는 그저 그 교단이 강조하는 강령의 차이라는 상식적인 사실을 써핑을 통해 새삼 재발견한다.

나의 입장은 16세기 루터교회 신학자 Rupertus Meldenius의 견해와 다르지 않다.

In necessariis unitas,
본질에서는 일치를,

in dubiis libertas,
의심엔 자유를,

in omnibus caritas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내가 에큐메니칼 서핑을 즐기는 이유는 대단히 단순하다. 나는 내가 인정하는 에큐메니즘의 범위에 들어가는 프로테스탄트 교단들 간의 교리가 세부적으로 다른 해석법을 따른다하더라도, 이들 간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판단한다. 이것은 대체적으로 서방교회에 뿌리를 둔 프로테스탄트가 즐겨 신경으로 사용하는 {사도신경}의 고백에 따라 "거룩한 공회/ Holy catholic Church)" 혹은 "보편교회"를 "믿"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관용에 대한 나의 관점을 강화한다. 그래서 서기 450년, 레랭(Lerins) 수도사 빈켄티우스가 분리되기 전의 고대 카톨릭 교회, 혹은 보편교회의 교리에 대해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있고, 누구나 믿는 것 / Quod ubique quod semper quod ab omnibus creditum est” 이라고 말한 것은 참으로 옳다.

내가 생각하는 에큐메니컬 써핑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차이를 볼 수 없다면, 관용도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조합일지는 모르나) 이렇게 나의 "원칙"을 고백한다.

  • 나는 옳지않음에 대해 불관용을 보인 루터의 정신을 닮을 것이다. 그러나 극단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성공회의 정신 역시 따를 것이다.
  • 나는 절대적인 신의 주권에 대한 관점에서는 장로교도와 같이 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자유의지의 올바른 사용과 반성과 실천을 중시하는 점에서는 감리교도처럼 될 것이다.
  • 성서에 대한 진지하고 근본적인 탐구에 대해서는 침례교도들처럼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전승의 바른 계승에 대한 루터교회, 성공회, 장로교회의 정신 또한 존중할 것이다.
  • (엄정한 분별을 잊지않는 선에서) 신을 향한 외적인 정열에 대해서는 (온건한) 오순절교도들을, 그러나 신을 향한 내적인 집중에 대해서는 퀘이커 형제들을 닮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고대의 보편신조들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거룩한(Holy) 보편적(catholic) 교회(Church)"에 소속되어 있는 그저 한 명의 '그리스도인 Χριστιανός'일 뿐이므로.




P.S. 몇개의 방문기록만 간추려서 포스팅하겠다.


순서

루터교회
안티오키아 정교회
퀘이커
성공회
등등

(옮기는 중....)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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